요즘 한국에서는 동안(童顔)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얼굴이나 모습이 나이에 비해서 현저하게 젊어 보일 때 그것을 두고 동안이라고 합니다. 동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운동은 물론 심한 경우는 성형수술까지 불사한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동안은 노안(老眼)으로 바뀌는 것이 순리일 찐대 지나치게 외모에 집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키가 작아서인지 나이에 비해서 젊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얼굴에 주름도 있고 눈가에 다크써클도 생겼지만, 멀리서 얼핏 보면 대학교 4학년 아들을 둔 50세 중년 남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저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10년은 젊은 30대 후반으로 보았고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저를 아직도 젊은 목사로 생각하시는 것을 보면 제 판단이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동안을 자랑할 날이 그리 멀지 않음을 느낍니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머리는 거의 백발입니다. 사진은 거짓말을 시키지 않는다고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데, 저 역시 사진에 나온 제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중년 아니 이제 50대에 접어든 노년의 모습도 보입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고등학교 동창들의 인터넷 까페에 들어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까까머리에 검정색 교복을 입고 미소년 같았던 친구들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조금 심하게 말하면 늙수그레한 남자들이 등산을 가서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때 그 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입니다. 30년 동안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생소할 만큼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저도 슬쩍 일어나서 거울을 봅니다. 동안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도 인터넷에 올라온 고등학교 동창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친구들도 나를 보면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쓸쓸해 집니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예전의 부모님들이 그토록 사진 찍기를 싫어하셨고 거울 앞에서 심난한 표정을 지으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이렇게 지나갑니다. 한 세대가 지나면 다음 세대가 오고 세상은 변하지 않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자꾸만 지나가게 마련입니다. 이것을 익히 간파한 구약 성경의 전도서에서는 인생살이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나간 세대는 잊혀지고 앞으로 올 세대도 그 다음 세대가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다”(전도서1:1). 그러니 너무 세상살이에 집착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물 흘러가듯이 세상의 순리에 순응하면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이 변해가는 것은 정상입니다. 동안만 좋은 것이 아니라 노안 속에도 매력이 있습니다. 그 동안 살아온 인생 경험이 얼굴에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까지 꿋꿋하게 여러 가지 풍상을 겪으면서 견디고 살아온 것만도 대단한 것입니다. 물론 신앙인이라면, 이것이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도와주셨고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의 손을 붙잡고 동행해 주셨기에 가능했던 지난 날들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거기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의 얼굴 속에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깃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비록 동안이 아니어도 행복한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거울 앞에 서서 행복한 표정으로 웃어봅니다. 멋진 모습입니다. 세상에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매우 독창적인 얼굴입니다. 웃는 모습 속에 희망이 보입니다. 남은 인생을 한결같이 인도해 주실 하나님을 향해서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시편4:6). 아멘.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201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