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날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날개는 말 그대로 새들이 하늘을 날 때 필요한 신체기관입니다. 그런데 새, 즉 조류에 속하면서도 날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 날더라도 멀리 또는 높이 날지 못하고 날개만 퍼덕거리는 수준의 조류들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북극에 살고 있는 펭귄입니다. 펭귄은 마치 신사들이 파티에 갈 때 입는 연미복처럼 멋진 날개를 갖고 있지만 날갯짓만 할 뿐 날지 못합니다. 날기는커녕 걷는 것도 기우뚱거립니다. 솔직히 펭귄을 새라고 부르기도 조금 민망합니다. 하지만 펭귄도 물고기를 사냥하거나 적에게 쫓길 때는 날개와 짧은 발을 사용해서 비상할 정도로 민첩하게 달릴 수 있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의 생태에 맞게 신체구조를 설계해 주신 셈입니다.
조류에 속하면서 거의 날지 못하는 또 다른 새가 바로 닭입니다. 닭은 푸드덕거릴 뿐 거의 날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닭도 엄연히 조류에 속하고 날개를 갖고 있습니다. 닭의 날개는 어디에 사용될까요? 닭은 날개로 알과 새끼를 품어 보호합니다. 알이 부화되기까지 어미닭은 자신의 체온을 사용합니다. 닭은 몸이 따뜻한 온혈동물이어서 알을 품고 부화하기에 적합하게 창조되었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어미닭은 알에서 부화한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어서 보호합니다. 닭뿐만 아닙니다. 대부분의 어미 새들은 날개를 사용해서 알을 품고 부화시킵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어느 정도 자랄 때 까지 어미 새는 날개아래 새끼를 품어서 보호합니다. 새들의 모성본능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것을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는 것으로 비유해서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탄식하실 때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23:37). 이처럼 새들의 날개는 새끼를 보호해 주는 기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새들이 날개로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듯이 품어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강한 척 해도 누군가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함께 어울려 살면서 서로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주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미 간파한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날 아래 감추사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시17:8-9).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숨기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길 원합니다. 험한 세상에서 우리를 홀로 있게 버려두지 않으시고 주의 날개 아래 품어 주시고 다가오는 모든 환난과 시련으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