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시카고에서 열린 청년 집회에 참석했다가 몇몇 청년들과 요즘 대세인 페이스북(facebook)으로 서로 소통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때부터 젊은이들 용어를 빌리면 “페이스북질”을 하게 되었는데 그 지경이 생각보다 넓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잊었던 친구들을 마구 찾아 줍니다.
페이스북을 시작하면서 10년 만에 찾은 친구가 있습니다. 동부에 있을 때 성당에 다니는 오누이와 함께 매주 월요일 성경읽기 모임을 했습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성실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오빠는 뉴욕으로 직장을 다녔고 동생은 의대를 준비 중이었는데 월요일이 되면 꼬박꼬박 제가 다니던 신학교 기도실로 찾아와서 성경을 읽고 서로 느낀 점과 기도제목을 나누는 시간을 한 시간여 가졌습니다. 인디애나로 옮기면서 이들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늘 궁금했었는데 페이스북이 이들을 찾아 주었습니다. 동생은 맨하튼에서 의사로 일하고, 오빠는 연방은행의 높은 자리에 올라서 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세 식구가 모이면 제 얘기를 자주 했었고 어디 있든지 좋은 목사가 되길 기도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서로 연락할 수는 없었지만 기도 가운데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페이스 북은 개인의 속사정이 모두 드러나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롭게 조절하면 서로의 마음을 여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올리는 글을 보면서 “좋아요”라고 공감할 수 있고 격려의 글을 달아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기도제목을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수십 년 만에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들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거울 보듯이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줍니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대하고 사용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날 뿐 세상의 모든 일들이 유익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성경 말씀이 매사에 진리임을 또 한번 깨답습니다.
우리는 홀로서기가 불가능합니다. 그 만큼 연약하고 쉽게 부숴지는 질그릇들입니다. 서로 지켜주고 세워주고 북돋아 주면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일은 기도로 돕는 것입니다. 기도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접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온라인상에서 서로 연락하고 대화할 수 있듯이, 하나님과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볼 수 없지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마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시편기자의 고백대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귓전에 울려 퍼집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것으로 응답해 주심을 믿습니다.
기도 가운데 가장 귀한 기도는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성경에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지는 금향로로 비유했습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예전에 만났던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고, 앞으로 만나게 될 신앙의 동역자를 놓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피붙이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고 저 멀리 지구 끝에 있는 이름 모를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곧바로 응답되는 것을 보고 기뻐할 수 있지만 이웃을 위한 기도는 금방 열매를 볼 수 없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이처럼 이웃을 위한 기도는 사랑과 소망으로 심는 기도의 씨앗들입니다.
세상에 눈물겹게 감사한 말이 있습니다.:“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그 어떤 입에 바른 칭찬이나 격려보다 뒤에서 묵묵히 기도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도 누군가 뒤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의 기도, 가족들의 기도, 교회 식구들의 기도, 잊혀진 줄 알았는데 기도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던 친지들의 기도가 오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이제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기도의 품앗이에 참여하기 원합니다. 기도 가운데 서로 연결된 세상은 참 아름다운 하늘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2012년 12월 26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