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이틀 앞둔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이 주님의 종의 죽으심이라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에 죽음의 길을 가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의 비유에서 잘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땅을 소작인들에게 맡겼습니다. 추수할 때가 되어서 주인의 몫을 가져오려고 종을 보냈습니다. 소작인들은 주인이 보낸 종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냅니다. 다른 종들을 보냈지만 매한가지였습니다. 주인은 자신의 아들을 소작인들에게 보냅니다. 아들은 대우를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소작인들은 아들을 죽입니다. 상속인을 없애면 땅이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과 행함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한 기적들을 보면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은 십자가를 향해서 가시는 발걸음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사야서 53장 7-9절 말씀은 주님의 종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님의 종은 그의 비천하고 볼품없는 모습 때문에 무시 받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마치 자신이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것처럼 고난의 길을 갔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마저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의 허물로 인해서 찔렸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고난과 질고를 지고 가셨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말없이 죽음의 길을 갔습니다. 6절에서 우리가 양 같아서 각기 제 갈 길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와 똑같은 양이 되셔서 말없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주님의 종이 죄를 지어서 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분은 철저하게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죽음의 길을 가기까지 복종하셨고 결국 무덤에 묻히시는 죽음의 끝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속의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은 영락없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세상에 오셨고, 유월절 어린양이 죽어서 그 피로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듯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양이 우리를 대신해서 제물로 드려지듯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 받았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일 년에 한 번씩 성전에 가서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한 번에 그리고 영원히(once and for all)사해졌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강절 마지막 네 번째 주일을 보내고 성탄을 맞으면서,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부터 급기야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말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마음 속 깊이 모시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