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마가복음에는 여리고라는 동네에 살던 한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뜨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 소경은 “바디메오”입니다. 성경본문은 친절하게도 이것이 그의 이름이 아니라 “디메오의 아들”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줍니다.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소경 바디메오 – 그는 이름도 없이 아버지의 성함으로 불렸습니다. 여리고는 상업이 발달해서 세무서가 있을 정도의 도시였기에 길목을 잘 지키면 수입이 꽤 괜찮을 수도 있었겠지만 소경 바디메오의 실존은 말 그대로 불쌍한 인생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시에는 소경으로 태어나면 부모의 죄로 또는 태아인 자신의 죄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지가 많은 중동 지역에는 눈병이 깊어지면서 중간에 시력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저주받은 인생으로 취급 당했습니다. 바디메오는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했다고 성경본문이 전합니다. 길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입니다. 이처럼 바디메오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상관없이 그들이 던져주는 동전소리에 일희일비하는 타인의존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여리고에 들어오시면서 소경 두 명을 고치셨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여리고 세무서장 삭개오를 찾아가셨습니다. 눈은 볼 수 없지만 귀는 밝았을 바디메오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저절로 들려왔을 것입니다. 길가에 앉아 있으니 적선뿐만 아니라 자연스레 귀동냥도 즐겼을 테니까요. 그런 예수님이 많은 무리들과 함께 자기 앞을 지나간다는 소식입니다. 운수 대통한 날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조금씩만 적선을 해줘도 며칠은 거뜬히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것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소경 바디메오는 그 이상을 보았습니다. 물질적인 행운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습니다. 지긋지긋한 죄의 고리와 외로움 그리고 깜깜한 절망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입니다.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빛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들은 바디메오가 크게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절한 외침입니다. 헬라어 본문은 바디메오의 외침이 폭탄이 터질 듯한 탄성이었다고 소개합니다.울부짖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지시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부르짖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소경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멈춰서 그를 불러내십니다. 바디메오의 외침이 예수님의 귓전에 아니 마음에 전달된 것입니다. 소경은 겉옷을 두고 뛰어 나갑니다. 무엇을 해주기 원하냐는 예수님의 말씀에 다시 보기를 원한다고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선포하시면서 소경의 눈을 밝혀 주십니다. 바디메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그 길에서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마가복음에서 소경 바디메오가 눈을 뜨는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는 예루살렘 입성 바로 직전에 행한 기적입니다. 바디메오가 외친 “다윗의 자손 예수여”는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로 오셨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안에서 소경 바디메오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디메오의 외침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에서 그 유명한 외마디 기도 “키리에 엘레이손(주여 불쌍히 여기소서”가 나왔습니다.
바디메오,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외마디 기도는 교회사 2천년 내내 가장 훌륭한 그리고 애절하고 진솔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존재감 없이 깜깜한 인생을 살던 바디메오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생명의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2013년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소경 바디메오처럼 각자의 인생길에 앉아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이 필요한 인생들입니다. 어두움을 몰아낼 생명의 빛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을 향해 외쳐 부르짖기 원합니다. 짧지만 간절하고 예수님의 심금을 울리는 기도를 올려 드리기 원합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키리에 엘레이손)! (2013년 2월 21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