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여리고 소경 거지 바디메오는 자신이 스스로 표현했듯이 불쌍한 인생입니다. 길가에 주저앉아서 남의 손끝만 바라보는 절망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간에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서 시력을 잃었기에 바디메오가 느끼는 좌절감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입니다.
그가 사는 길은 은혜를 힘입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저주받은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를 죄로부터 풀어주어야 합니다. 앞을 못 보게 된 것이 죄를 지은 결과라는 사람들의 판단과 따가운 눈초리로부터 자유케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죄의 권세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용서가 꼭 필요합니다. 바디메오의 눈을 뜨게 해서 새로운 삶을 살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도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소경 바디메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다가왔을 때 사생결단을 하고 외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절박한 외침입니다.
복음서 속에 나타난 예수님은 밝은 눈과 귀를 갖고 계심에 틀림없습니다. 웬만한 외침을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으십니다. 뒤로 슬며시 다가와서 옷깃을 만진 여인의 손놀림도 예수님은 감지해 내십니다. 38년 동안 병을 앓고 있는 베데스다 연못의 중풍병자도 외면치 않고 포착해 내십니다. 나인성에 들어갈 때 장례행렬과 마주칩니다. 외아들을 잃고 슬픔에 가득 차 있는 나인성 과부의 모습과 마음도 알아차리십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의 얼굴을 한번만 보고 싶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무릅쓰고 나무에 올라가서 앉아 있었는데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다가오셔서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을 찾고 부르는 사람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셨고, 자신의 은혜와 능력을 구하는 사람들을 친히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애타게 부르짖던 여리고 소경의 외침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소경이 예수님을 부른다고 윽박질렀지만 예수님은 여리고 소경의 외침에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사람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을 것입니다. 이제 현장에는 예수님과 여리고 소경만 남겨져 있는 듯 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입을 여십니다.:“그를 부르라”
소경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남달랐을 것입니다. 불쌍한 인생 소경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신 목소리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조용히 하라고 소경을 야단치던 사람들이 이제는 소경을 향해서 부드럽게 말합니다.:“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이처럼 군중들의 심리는 조변석개처럼 변덕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의 말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여리고 소경처럼 예수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드리고,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는 영적 집중력이 매 순간 요청됩니다.
다음 한 주간 우리의 인생길에 머물러 서서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소통을 하지만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멈추시는 발걸음과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