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2 : 벧세메스의 암소

성경 속에는 갖가지 동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노아는 홍수가 그치고 땅이 말랐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까마귀와 비둘기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양이나 염소 그리고 때로는 소와 비둘기가 쓰였습니다. 이 밖에도 독수리와 같은 날짐승, 사자와 같은 들짐승 그리고 고래처럼 큰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수많은 동물들이 성경에 등장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동물들 가운데 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구약성경 사무엘상 6장에 나오는 벧세메스 길을 걸어갔던 두 마리의 암소입니다. 살아가면서 또는 목회를 하면서 힘겨울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깊이 묵상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 패하면서 하나님의 법궤를 팔레스타인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팔레스타인의 신당에서는 그들의 신 다곤이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고꾸라지고 팔다리가 끊어졌습니다. 법궤가 가는 곳마다 전염병을 일으키고 큰 재앙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전쟁에서 졌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능력 있는 신임을 적지 한 가운데서 보여준 셈입니다.

결국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법궤를 벧세메스라는 곳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하고 암소 두 마리를 데려왔습니다. 이들에게는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새끼들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신출내기입니다. 이 암소 두 마리에게 난생 처음으로 멍에를 메게 하고, 새로 짠 수레를 연결시킵니다. 수레 위에는 법궤를 올려놓습니다. 암소 두 마리가 스스로 법궤를 끌고 벧세메스를 향해서 곧장 나아가면 팔레스타인에 일어난 재앙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임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두 마리의 암소가 발을 맞춰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게다가 자신들의 발걸음을 주시하고 있는 수많은 팔레스타인들의 눈길이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습니까? 멍에를 처음 메었으니 얼마나 불편하였겠습니까? 배가 고파서 엄마를 찾는 송아지들의 울음소리가 귓전을 울렸을 테니 어미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당장이라도 멍에를 떨쳐 버리고 새끼들에게 돌아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본문은 두 마리의 암소들이 울부짖으면서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꿋꿋하게 벧세메스를 향해서 나아갔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벧세메스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희생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자신의 몸까지 제물로 드려진 벧세메스의 암소를 생각하면 비록 동물이지만 조용히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리고 벧세메스로 향하는 두 마리의 암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을 연상시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루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또한 벧세메스를 향하는 암소는 삶의 고통과 아쉬움을 가슴에 품고 신앙의 순례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모습, 아니 이 시간 벧세메스의 암소를 생각하면서 가슴을 쓸어 내리는 바로 당신의 모습입니다. 소리를 내지도 못한 채 속으로 울음을 삭히면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꿋꿋하게 벧세메스 길을 향해서 나아가는 당신!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그리스도인이십니다. 힘내십시오!(SF한국일보종교칼럼, 2007.4.17)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