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포유동물들은 엎드려서 네 발로 걷는데 우리 인간들은 두 발로 서서 직립보행을 합니다. 다른 동물들처럼 엎드려서 네 발로 기어 다녔다면 인간의 모습은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도 전혀 다르게 펼쳐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발로 걷다 보니 두뇌도 발달하고 자유로운 두 손을 사용해서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두 발로 서서 걷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셈입니다.
서서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인간은 무릎 꿇고 엎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무릎을 꿇고 엎드립니다. 성경에서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할 때도 엎드리다는 표현을 씁니다. 지은 죄를 뉘우칠 때도 엎드립니다.여기서 통회자복(痛悔自服)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스스로 엎드려서 가슴을 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아간이라는 사람이 전쟁에 나갔다가 전리품을 몰래 숨깁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전쟁에서 패(敗)하게 하십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하루 종일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통회자복합니다. 엘리야 선지자 역시 바알 선지자들과의 갈멜산 대결에서 이긴 후에 가뭄을 그치고 비를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서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엎드립니다. 간절함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내주셔서 비를 예비하시더니 곧이어 큰 비를 내려주십니다. 엎드림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도 엎드림의 동작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베드로의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헛수고를 한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잔뼈가 굵은 베드로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깊은 곳으로 배를 몰고 가서 그물을 던집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육지로 나온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체험하고 두려움 속에 엎드린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베드로의 엎드림은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시작점이었습니다.
엎드림은 성경의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엎드려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엎드려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인생길에 폭풍우가 불어오면 땅바닥에 엎드리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두 발로 걷도록 만드셨다지만 인생의 모진 바람을 일어서서 온 몸으로 맞는 것은 어리석다못해 매우 교만한 행동입니다. 엎드려 있으면 폭풍우가 머리위로 지나갑니다. 땅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있으면 자신이 흙으로 빚어진 연약한 존재임을 금새 깨닫습니다. 일어서 있을 때는 자신의 그릇된 모습이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무릎 꿇고 엎드리면 저절로 통회자복이 나옵니다. 이처럼 엎드림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더욱 더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저는 인생길이나 목회의 여정에서 어려움이 찾아오면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폭풍우가 다 지나가길 엎드려 기다립니다.엎드려서 제 자신을 샅샅이 살펴보는 내적성찰의 시간을 갖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들이지만 엎드려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어느 순간엔가 폭풍우를 동반한 먹구름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에 맑은 햇살이 비춰옵니다. 그때 일어나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드립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그렇게 엎드려서 어려움을 견뎌왔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손을 붙잡아 일으켜주셨습니다.
아마도 일어서 있었다면 넘어졌을 것입니다. 폭풍우를 온 몸으로 맞을 힘도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엎드려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엎드려있었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엎드린 사람만이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길입니다. 인생길에 불어 닥치는 모진 바람을 두 발로 서서 온 몸으로 맞기보다 무릎 꿇고 엎드려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엎드린 우리를 지켜주시고 손잡고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2013년 6월 27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