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이야기

좋은 아침입니다.

1.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교회 앞 정원에 익어가는 사과가
우리 교인들의 인기를 독차지 합니다.

주일날 일찍 오신 권사님들이
한 주간 동안 자란 사과를 보시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십니다.

올 해 유독
사과가 많이 열렸습니다.
다닥다닥 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엊그제 누군가
손이 닿는 높이의 사과를 모두 따갔습니다.
발길이 잦은 길가에 있다지만 조금 심했습니다
얼마나 허전하고 마음이 아프던지요!

2.
정원 앞 사과가 없어진 것을 보면서
어거스틴이 자신의 청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배 도둑질했던 것을 고백하는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은 배가 고파서도 아니요, 궁핍해서도 아니요,
다만 착한 일을 무시하고 싶고 또한 죄를 짓고자 하는 강한 충동에 어찌 할 수 없어 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아름씩 배를 가지고 와서는 그것을 먹지도 않고
몇 개를 겨우 맛만 본 다음 돼지 떼에게 던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즐거웠으니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재미였습니다. (고백록, 2권 4장)

아담 이후 죄의 속성을 가진 모든 인간들에게는
죄를 즐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착한 일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재미를 느끼려는 충동입니다.

아마 교회 앞 사과를 따간 분도
비슷한 충동에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3.
지난 며칠 사과나무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언짢고 누가 사과를 따갔을까를 생각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제 안에도 비슷한 속성이 들어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죄짓는 것을 즐기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을까요!

4.
오늘 저녁 청년들과 함께 읽은 유진 피터슨의 책 주제도
다윗의 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죄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희망적으로 마무리합니다.

죄인의 자리는 책망과 정죄를 받는 자리가 아니라 구원을 받는 자리라는 소식 말이다.
복음의 초점은 고발이 아니라 인정(recognition)과 초대다.
인정: 죄를 깨닫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깨달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초대: 예수님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며-하나님이 이렇게 가깝고 좋고 매혹적인 분이라니!- 사랑과 구원을 주시는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게 해주는 분이다.

다른 어떤 것 – 밧세바를 즐기는 쾌락이나 우리아를 부리는 권력 – 보다도 하나님이 더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다. 내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하는 하나님을 내게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유진 피터슨: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221)

우리 교회 정원의 사과를 따가신 분에게도
교회 사과를 통해서 아니 우리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복음의 생명수로
예수님의 은혜가 흘러 넘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성을 바로 깨닫게 하시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 위에 뜨겁게 임하는 주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7.25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