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이야기를 좋아하신다(God loves stories)”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어떤 사건의 줄거리를 단순하게 전달하는 식이 아니라, 세상 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 속에 의미를 담아서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속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을 들여다봅니다.때때로 성경 속의 인물이 되어서 함께 고뇌하고, 함께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기도 합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에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직하고 솔직하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이 하나님 말씀에 포함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두 번씩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부전자전이라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같은 잘못을 범합니다. 야곱은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빼앗기 위해서 어머니와 짜고 아버지 이삭을 속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잘난척하는 동생 요셉을 시기한 나머지 외국 상인들에게 팔아 버립니다. 때때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경의 이야기들은 솔직합니다.
성경 속의 이야기들은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데 성경의 하나님은 홀로 저 멀리 하늘에 계시지 않고, 세상 안으로 들어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시기와 질투, 미움과 다툼은 물론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못된 인간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성경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연애편지라고 부릅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고화질 텔레비전이 발명되었어도 어렸을 때 어머님이나 주일학교 선생님들께서 들려주신 성경 이야기들의 흥미진진함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어른이 되어서 어릴 적 들었던 성경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있습니다. 다윗이 물 맷돌 다섯 개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친 이야기는 지금 읽어도 흥미진진합니다. 들릴라의 유혹에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이 힘없이 블레셋에 끌려가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슬퍼집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릴 적부터 성경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야기들로 성경을 가득 채워놓으셨듯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도 이야기가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야기를 들려주시듯이 우리들도 하나님께 우리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이야기, 세상에 내놓기 어려운 실패담(失敗談), 때로는 결말을 보지 못한 미완성의 이야기들도 괜찮습니다. 물론 자랑스럽고 감사한 이야기들은 쉽게 풀어낼 수 있겠지요. 그렇다고 보기 좋게 꾸밀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들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속에 담아 놓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솔직한 이야기를 즐겨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과 매사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걷는 인생길 속에는 간증과 고백, 주옥 같은 신앙 이야기들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우리 인생의 배경음악처럼 은은하게 삶 속에 울려 퍼집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더불어 써 나가는 우리들의 인생 이야기는 솔직하지만 깊은 맛을 내게 마련입니다.
이야기가 있는 인생길은 쉽게 잊혀지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지나치는 인연과 하찮은 만남도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면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하루 하루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야기로 엮어내면 됩니다. 그때 작은 일도 큰일로 변하고 우리네 하찮은 인생도 하나님 앞에서 보배롭고 귀한 인생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이야기들로 가득 찬 인생길이 되길 원합니다. 그 속에서 인생의 깊이와 신앙의 귀함을 깨닫기 원합니다. (2013년 9월 12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