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살펴본 다윗은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죄를 범했습니다. 신하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 신하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이 치명적인 죄를 범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가 범한 죗값을 톡톡히 치렀습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아들을 낳고 이름을“솔로몬”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면서(샬롬)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이름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인 “여디디야”로 바꿔주십니다. 다윗을 위로하시고 새로운 힘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다윗 정도는 아니지만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 베드로입니다. 반석과 같은 믿음을 갖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라고 예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합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예고하셨건만 베드로는 그만 두려움에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다짐을 저버렸으니 자신과 예수님께 큰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향 갈릴리에 가서 어부의 생활을 다시 시작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가 범한 실수로 인해서 더 이상 사도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일했지만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 오셨습니다. 처음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와 매우 비슷한 상황입니다(눅 5장). 숯불에 아침식사를 차려주시고, 베드로에게“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연거푸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며칠 전 모닥불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어놓으신 것과 좋은 대비를 이룹니다.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지 세 번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무조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폐로 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한 터라 면목도 없고 자신도 없었을 베드로는 아가페로 대답하지 못하고 평범하게 사랑한다고 동료간의 사랑(필레오)로 대답합니다. 결국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마음으로 내려오셔서 아가페가 아닌 필레오로 물으십니다. 거기서 베드로가 무너집니다.:“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의 음성이 베드로의 삶에 깊이 새겨집니다.:“내 양을 먹이라. 나를 따르라.”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 여디디야라고 불러주셨던 하나님과 베드로를 직접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 물으시고 그에게 주님의 양을 맡기신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합니다. 흘러넘치는 은혜는 부서진 마음이 용서받고, 회복되었을 때 임합니다. 그 일을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 오셔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말끔하게 용서해 주십니다. 베드로에게 양을 치는 사명을 주셨듯이 용서와 회복 후에는 주님의 일을 맡겨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해서 행하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할렐루야!-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