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제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큰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준비 중이고 둘째도 어느덧 대학교 4학년이 되었습니다. 15년 전 유학 길에 오르면서 김포공항(그때는 인천공항이 없었음)을 떠날 때 작은 아이가 자기 몸집보다 큰 가방을 메고 출국심사를 받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아이들이 저를 내려다볼 정도로 성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엄하게 키웠습니다. 잠언 말씀 (잠언 13:24)을 핑계삼아(?) 아이들이 잘못할 때마다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가슴 아파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회초리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에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은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듯이 어렸을 때 받은 엄한 교육이 아이들의 심성을 바르게 합니다. 매사에 조심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꽤 있습니다. 아이들이 쉽게 주눅이 들곤 합니다. 지금도 제 목소리가 커지면 사뭇 긴장합니다. 잘못했을 때 자신들도 모르게 아빠에게 야단맞을 것을 먼저 걱정합니다. 어릴 때부터 생긴 습관이 몸에 베어서 그렇습니다.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들면서 신혼시절부터 저희 부부가 세운 원칙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매를 들면 아내가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입니다. 함께 야단을 치지 않고 한 사람은 아이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저 역시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어서 잠이 들락날락할 때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속삭이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회초리를 든 것이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로 남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아이들이 열 살이 되면 더 이상 회초리를 들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열 살쯤 되면 아이들과 진지한 대화가 가능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열 살이 되면서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듭니다. 학교 공부가 늘어나는데 텔레비전 앞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비교적 마음 고생을 하지 않고 사춘기를 보냈지만 그래도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열살 이후로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대신에 부모인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어릴 때는 회초리를 들었지만 아이들이 커가고 그들의 자아가 자리잡으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가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사춘기의 아이들과 대화로 풀어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몸집은 커졌지만 부모의 눈에 자식은 늘 어리게 보였습니다. 이런저런 일들로 아이들의 어깨가 축 쳐져 있을 때에 아이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주었습니다. 아이들도 엄마와 아빠가 자기들을 위해서 기도해준다는 것을 알고 힘들 때마다 기도제목을 알려줍니다. 기도는 부모와 자식이 하나님 안에서 소통하는 최고의 방법임을 배웠습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 기도의 힘은 회초리보다 강합니다. 회초리를 갖고 아이들의 그릇된 습성을 고칠 수 있어도 그들의 인생길을 열어줄 수는 없습니다. 사랑의 매라고 해도 신체에 가해지는 회초리는 아이들의 마음에도 상처를 입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부모의 기도는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북돋아 줍니다. 기도하는 부모를 둔 자식은 비뚤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기도로 뿌린 씨앗은 결국 싹이 나게 마련입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만 기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젊은이들을 만나면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고 고민을 토로합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앞 길이 불투명해서 늘 염려와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목사님 기도해주세요”라고 서슴없이 부탁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짐작이 갑니다. 어르신들도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몸이 약해지면서 마음도 약해지십니다. 자식들은 물론 친지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마음 속에 돌덩이가 점점 커집니다.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하소연 할 곳도 없습니다. 역시 기도가 필요하신 분들입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우리 모두는 기도가 필요한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누군가 기도해 준다는 말만 들어도 위로가 되고 힘이 생기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인 저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 드리는 것을 가장 큰 특권이요 사명으로 삼게 됩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 지금 이순간도 누군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부족함이 없을 만큼 삶이 평안하시다면 자녀들과 친지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행여나 어려운 인생길을 걷고 계시다면 힘내십시오. 일어서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나가십시오. 누군가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2013년9월 26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