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반

10월은 개신교인들에게 뜻 깊은 달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자 말틴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앞에 당시의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반박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게시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루터는 베드로 성당의 건축비와 은행 빚을 갚기 위해서 무분별하게 면죄부를 발급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관행에 분개했습니다. 면죄부를 팔면서 면죄부를 사고 헌금을 헌금통에 넣는 순간 “쨍그랑”소리와 함께 죽어서 연옥에 있던 부모와 친지들이 구원받게 된다고 백성들을 현혹시켰습니다. 이러한 달콤한 논리에 많은 사람들이 면죄부를 샀고 이것은 결국 교회의 부정축제 수단이 되었습니다. 루터는 그의 반박문에서 헌금통 안에 던져진 돈이 쨍그랑 소리를 냄과 동시에 연옥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학설이라고 못박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면죄부를 팔수록 연보궤 안에서 인간의 탐욕과 잇속만 늘어난다고 당시의 교회를 비판했습니다.

면죄부와 비슷한 관행이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음을 신약성경이 소개합니다. 마가복음 7장에는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간의 논쟁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짚어먹는 것을 본 종교지도자들이 당시의 율법을 들이대면서 예수님께서 부정한 사람들을 제자로 데리고 다닌다고 딴지를 걸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이 만들어낸 사람의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보다 앞설 수 없다고 반박하십니다. 거기서 한발자국 더 나가셔서 고르반의 예를 갖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계명을 변질시켰다고 말씀하십니다.

원래 고르반은 히브리어 “예물”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히브리어로 고르반이라고 합니다(레1:2). 이것이 후대로 오면서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한가지는 원래의 뜻 그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고, 다른 것은 하나님께 드린 것은 금할 것이 없다는 금지명령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어떤 종교지도자들은 고르반 규정을 그릇되게 가르치고 강요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부모를 모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릴 적에는 부모가 보호자가 되고 그늘이 되지만, 부모님께서 연세가 드실수록 상황이 역전되어서 부모가 자식들의 짐이 되기 십상입니다. 예수님 당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어긴 사람들 또는 부모를 공경할 생각이 없는 자식들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팔았는데 그것이 바로 고르반이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 대신에 성전에 고르반 예물을 드리면 부모님을 모실 책임이 면제된다는 관행입니다. 고르반을 선언하고 나면 그 어떤 책임과 의무도 고르반 선언을 금지할 수 없습니다. 일종의 책임회피입니다. 십계명을 왜곡시킨 “사람의 전통”입니다. 혹자에 의하면 예물을 드릴 필요도 없이 성전에 와서 고르반 서약을 하고, 보증금을 걸듯이 일부만 예물로 드리면 부모에 대한 책임도 면제받고 남은 재산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고르반이나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던 면죄부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왜곡시키고 자기 편한 대로 하나님을 믿겠다는 얄팍한 심리를 잘 드러냅니다. 책임을 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쉽게 믿고 편리하게 살고 싶은 본성이 있습니다. 헌금통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죽은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식의 신앙은 매력이 있어서 현혹되기 쉽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잇속과 쉽게 믿고 축복만 받으려는 기복주의가 만나서 보기 흉할 뿐만 아니라 그릇된 신앙이 만들어졌습니다.

솔직히 면죄부나 고르반의 관행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것을 사람들이 만들어서 그것이 신앙인 것처럼 믿고 따릅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천로역정과 같은 신앙을 가르치기보다 편하고 값싼 은혜를 설파합니다. 종교개혁주간을 맞으면서 95개조 반박문에 있는 루터의 말이 마음을 울립니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죽은 자나 산 자나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영적 은혜에 참여 하는 것이다.””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꾸어 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선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고르반을 선언하고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폐하는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슬며시 자리잡은 그릇된 신앙의 관행들, 추하고 얌체 같은 편이주의(便易主義)를 낱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되고 바른 신앙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SF 한국일보 2013년 10월 24일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