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만찬

미국에 처음 와서 맞았던 추수감사절 만찬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뉴욕에 있는 한 한인교회에서 중고등부 전도사로 사역하던 때였습니다. 추수감사절 주일을 맞이하자 온 성도들이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서 교회로 가져왔습니다. 마치 한국의 추석명절을 맞듯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시고 신이 나서 추수감사절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추수감사절 몇 주전부터 교인들께서 칠면조 고기를 꼭 맛보아야 한다고 특별히 주문하셨습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칠면조 고기를 맛보았지만 푸석푸석하고 솔직히 맛은 별로였습니다. 고기와 곁들어 주시는 양념이 훨씬 맛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네 식구는 한국에서 먹던 양념통닭 얘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어제는 한 청년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10년 인디애나에서 목회하던 시절의 교회 주보를 사진찍어서 올려놓았습니다. 그 청년이 우리 교회를 처음 왔을 때 받았던 주보를 우연히 발견해서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올려놓은 것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때는 풋풋했던 청년들이 지금은 대부분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학부형이 된 청년들, 성경공부를 열심히 시켰더니 말씀대로 생육하고 번성해서 세 명의 자녀를 둔 청년들도 있습니다. 옛날 주보를 보고 있으니 제 마음이 10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인디애나에서의 추수감사절을 떠올리면 매년 우리 가족을 초청해 주시던 권사님 내외분이 생각납니다. 제가 태어난1962년에 결혼하셔서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인디애나로 시집오셨습니다. 미국 시어머니의 호된 시집살이를 다 견디셨습니다. 한국 사람이 없으니 한국말도 잊어 버린 때도 있으십니다. 그래도 변함없는 남편의 사랑을 먹고 그 모진 이민생활을 이겨내신 권사님이십니다. 은퇴하시고 두 분이 아담한 집에서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오순도순 살고 계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권사님 내외분이 우리 가족을 초청해 주셨습니다. 때로는 눈길을 헤치고 한 시간 가까이 운전해서 가야 하는 거리에 사셨지만 우리 네 식구는 추석날 부모님 뵈러 가는 기분으로 내려가곤 했습니다. 권사님의 특기는 호박파이와 감자요리셨습니다. 권사님은 칠면조 고기가 맛이 없다고 닭을 가지고 맛있게 요리해 주셨습니다. 한국전쟁 때 죽은 동생을 등에 업고 피난을 가던 사연부터 위성방송으로 시청하셨던 <장금이>와 <여섯 시 내 고향>에 나오는 한국 음식을 놓고 신이나서 얘기하시던 권사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샌프란시스코로 목회지를 옮기고 난 이후에는 추수감사주일에 교인들과 함께 칠면조 고기를 먹습니다. 뉴욕의 교인들처럼 우리 성도님들도 음식을 한가지씩 정성껏 준비해 오시고 칠면조는 여선교회가 전담해서 굽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는 청년들이나 교인들에게 칠면조 고기를 꼭 맛보라고 강력히 권합니다. 그리고 만찬이 끝난 다음에 맛이 어땠는지 약간 짓궂게 물어봅니다. 거의 대부분 잠시 머뭇거린 후에 “맛있어요”라고 대답합니다.  ‘한국에서 먹던 양념통닭만 못한걸요’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저는 금새 알지요. 그래도 온 교인들과 더불어 나누는 추수감사절 만찬은 늘 풍성하고 화기애애합니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의 절정은 온 가족 또는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만찬에 있습니다.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보냈던 청교도들도 일 년 동안 자신들을 도와준 인디언들을 초대해서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102명이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왔지만 겨울을 지내면서 절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디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들마저도 신대륙에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가족과 신앙의 동지를 잃은 슬픔이 마음 한 켠에 있었지만 살아남은 청교도들과 인디언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한데 어울러 첫 번째 추수감사절 만찬을 즐겼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을 맞습니다. 교회는 물론 각 가정마다 함께 모여서 푸석푸석한 칠면조 고기에 양념을 곁들어 먹으면서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습니다. 칠면조 고기만큼이나 기대에 못 미친 한 해의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추수감사절을 맞을 수 있음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아내와 함께 올해 추수감사절 만찬에는 누구를 초대할까를 의논하다가 작년처럼 가족들 없이 이곳에 남아있을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어김없이 그들에게 칠면조 고기를 적극 권할 것입니다. 맛있는 양념과 화기애애한 덕담까지 얹어지면 올 해도 풍성한 추수감사절을 보낼 것 같습니다. Happy Thanksgiving!
(2013년 11월 21일 SF 한국 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