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청년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여기저기 원서를 넣고 있지만 아직 좋은 소식이 없습니다. 실력도 있고 괜찮은 학교를 졸업했기에 무난히 좋은 직장을 구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해를 넘길 것 같습니다. 뒤에서 기도해주는 저도 조바심이 나는데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해를 넘기는 본인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는 언론보도가 남의 일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어디 직장을 구하는 젊은이들만 그럴까요?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거나, 올 해 이루려던 계획을 내년으로 미뤄야 하는 분들의 마음은 똑같이 조급할 것입니다. 아니 대부분의 일들이 마무리가 되기보다는 내년으로 이월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연말을 맞는 우리들의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고 도리어 무겁기만 합니다. 시간은 왜 이토록 빨리 흘러서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갔는지, 한 장 남은 달력이 괜히 야속해집니다.

이것은 설령 개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미국 경제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서민의 삶은 여전히 쪼들립니다.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것을 예측하고 양적축소를 발표했지만 우리네 서민들과는 딴 세상 이야기입니다. 과연 미국의 경기가 좋아져서 지금보다 나은 이민생활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시됩니다. 태평양 너머 조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더 갑갑합니다. 김정은이 집권한 북한에서는 하루아침에 권력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대한민국도 여전히 정치가 골치거리입니다.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서로 싸우는 모습이 추할 뿐입니다. 얼마나 기다리면 미국의 경기가 실감날 정도로 회복되고 조국 대한민국에서 좋은 소식들이 들려올 수 있을지요!

개인의 인생길이나 세상만사가 기다림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다 이루고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도달해 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임 오지 않는다는 노래의 가사처럼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급해집니다.

이와 같은 기다림은 이스라엘 최고의 왕 다윗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지만 그 후로 10여 년 이상을 광야에서 쫓겨 다녔습니다. 사울왕이 집요하게 그의 목숨을 노립니다. 사방에 적군입니다. 왕으로 등극하는 것은 그만두고 목숨 하나 부지하기 힘든 상황이 계속 펼쳐집니다.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미친 척까지 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 다윗은 주님께 탄식하면서 기도 드립니다: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립니다. 주님께서는 언제까지 지체하시렵니까?” (시편6:3).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는 호소입니다. 기다림의 끝이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에게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 된 것입니다.

올 한 해가 다 지나가지만 우리들에게도 “언제까지(how long)라는 질문이 남아있습니다.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지, 언제까지 더 참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준비만 해야 하는지, 과연 기다림의 끝이 있을 것인지 – 해는 저물어가는데 질문은 점점 늘어 갑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기다림이라는 단어 속에 희망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합니다.희망이 없으면 기다리지도 않겠지요. 기다림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기다림은 희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희망의 끈을 꼭 붙들고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 주어진 인생길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비결임을 한 해를 보내면서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기다림에는 끝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올해 못다한 일을 두고 너무 속상해하지 맙시다. 세상에 모든 일을 마음먹은 대로 다 해내는 사람은 없기에 기가 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심기일전해서 새해에 더 열심히 하면 되지요. 내년에는 아니 끝까지 믿음 가운데 기다리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주실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확신이고 자신감입니다. 내년에는 제가 간절히 기도해주는 젊은이에게도 좋은 직장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12월 26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