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자기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 다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편리할 텐데 차가 없으니 뚜벅뚜벅 걸어 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불편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힘이 들고 속도가 중요한 현대사회에서 뒤쳐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놓치기 쉬운 일상들을 뚜벅뚜벅 걸으면서 차근차근 포착할 수 있을 테니 뚜벅이로 사는 묘미가 솔솔해 보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세간에 회자되는 종교집단이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기독교 복음 침례회’이고 소위 ‘구원파’로 불리는 기독교 이단입니다. 이단(異端)은 처음은 유사할 수 있지만 끝으로 갈수록 진리에서 멀어지는 특정 교리나 종교집단을 일컫는 말이지요. 세월호 참사의 배후에 구원파의 핵심인물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온 국민의 시선이 구원파에 쏠렸습니다.
구원파에서는 회개와 자백을 구분한답니다. 회개를 구원받는 순간 행하는 일회적 사건으로 봅니다. 만약 구원을 받고도 재차 회개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다시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니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구원 이후의 회개는 자백으로 대치됩니다. 자백은 자신의 죄를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세월호의 선장은 물론 경영진들이 구원파 교리에 깊이 물들어있었다면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고도 입술로 자백하고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아찔한 생각도 스쳐 지나갑니다. 이와 같은 구원파의 교리는 성경을 자신들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성경에서는 회개를 강조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원 받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서 의롭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의롭다고 칭해진 것이지(稱義), 우리들 존재 자체가 완벽하게 의인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의인인 동시에 죄인” 즉 “용서받은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구원을 확신하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회개를 통해서 죄인의 모습을 청산하는 거룩함 즉 성화(聖化)를 이뤄가야 합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구원을 일회적인 사건으로 결론짓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회개, 삶 속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훈련과 성령의 인도하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 가는 거룩함의 여정이 넓게 보아서 구원의 과정에 속합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고 일갈했습니다.
한번의 회개로 죄가 모두 용서받고 의인이 된다는 교리는 복잡한 세상살이에 지쳐있는 현대인들에게 꽤 매력적입니다.구원의 확신은 물론 성경의 다양한 교리들을 단순명료하고 편리하게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뚜벅이가 아니라 자동차로 신앙의 길을 여행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여정은 존 번연의 말대로 하늘나라에 이르는 “천로역정”입니다. 신앙의 길을 가다 보면 여러 가지 유혹과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영광을 마음에 품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오르신 갈보리 언덕을 오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수록,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알아갈수록 진실된 신앙을 갖는 것이 쉽지 않음을 절감합니다. 예전에 함부로 주장했던 것들이 크신 하나님을 인간의 말과 생각에 가둬두는 교만이었음도 종종 깨닫습니다. 동시에, 한없이 깊고 모든 것들을 품을 만큼 넓고, 하늘에 닿을 만큼 높고 긴 기독교의 진리, 복음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무수한 이론과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글과 말들이 난무한 이 시대에 뚜벅뚜벅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립습니다. 자동차로 휙- 둘러보는 식의 편리한 신앙이 아니라, 사우나에 가서 땀을 쭉-빼듯이 감정만 충만한 일시적인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앞에서 고민하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진정한 신앙말입니다.우리가 받은 신앙은 한 순간에 이룰 수 있는 무지개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말 그대로 담담한 것입니다. 일상이 신비가 되고, 하루 하루의 삶이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임을 고백하면서 묵묵히 걷는 순례길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신앙의 여정이 되길 원합니다. (2014년 5월 22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