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인물 – 땅콩 박사와 최씨부인

이번 연속설교에서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본받을만한 신앙의 인물들을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땅콩박사로 유명한 조지 워싱턴 카버(Washington Carver)와 한국인 최초 해외선교사였던 최씨 부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워싱턴 카버는 흑인 노예의 아들로 1864년에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노예상인들에게 잡혀가면서 어린 시절을 힘겹게 보냈습니다. 워싱턴 카바는 매우 총명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림과 예술에도 재능이 있었고 비록 노예 신분이지만 싹싹하고 붙임성 있는 성품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림을 배우러 다니던 부부의 추천으로 흑인들을 받아주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중에는 아이오와 주립대학으로 옮겨서 농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워싱턴 카버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땅콩이었습니다. 농부들이 땅콩을 많이 재배하고 수확하는데 보관할 방법이 없어서 버려지곤 했습니다. 대학 연구소에서 일하던 위싱턴 카버는 땅콩을 사용해서 피넛 버터를 만드는 등 땅콩을 사용한 가공식품을 발명하게 됩니다. 땅콩 연구로 유명해 진후에는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서 수입땅콩에 관세를 높게 책정해야 한다는 세법개선책을 의회에서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평생 땅콩을 연구하면서 사회에 공헌하는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번째로 살펴볼 최씨 부인 최나오미는 1873년 개성에서 출생했습니다. 당시 풍습에 따라 젊은 나이에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술주정뱅이에 노름꾼입니다.. 게다가 아이를 갖지 못한 탓으로 시댁 어른들의 냉대도 극에 달했습니다. 어려운 삶을 살던 최씨 부인은 서양 사람들이 이상한 종교를 전한다는 소문을 들었고 선교사들이 주관하는 예배에 참석하게 됩니다. 낙천적이고 활발한 성격의 최씨 부인은 성실하게 예배에 나갔고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핍박도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습니다.

외출이 잦은 아내를 의심한 남편이 최씨 부인의 뒤를 쫓아서 몰래 예배에 참석합니다. 남녀가 따로 앉아 있고 선교사가 전하는 말씀이 틀리지 않은 것을 보고는 결국 남편도 예수님을 믿게 되고 나중에는 선교사 집에서 집사로 일하게 됩니다. 최씨 부인의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감리교회의 전도부인으로 임명되어서 원산 근처에 있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자기 몸에서 낳은 아이는 없지만 어려운 아이를 양자로 들여서 친자식처럼 키웠습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최씨부인은 시베리아 선교사로 자원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해외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시베리아에서 일 년 동안 선교를 하고 귀국해서 개성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평생 여성운동을 펼치다가 1949년 하나님께 갔습니다. 여성의 몸으로 해외선교사로 나갈 정도의 열심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더 많은 인재를 키우는 선교사역에 힘쓴 최나오미 부인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모두 완수하면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던 신앙의 인물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 귀감이 되는 신앙의 선배들이 계심이 자랑스럽고 도전이 됩니다. 우리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되고 세상에 도움을 주는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