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가면 사해 바다가 있답니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은 바다(dead sea)입니다. 사해 바다가 죽은 것은 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내지 않아서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사해 바다도 순환이 되지 않으니 그만 죽은 바다로 변한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 교회 표어가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인데 우리가 받은 것을 이웃에게 나눠주고 세상에 흘려보냄으로 살아있는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무엇이든지 나만 갖고 있으면 하나뿐이지만 그것을 누군가와 나눌 때 둘이 되고 셋이 되는 증폭의 역사가 일어남도 기억합시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칭찬 없이 책망만 받은 교회가 있는데 바로 사데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사데교회는“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라는 책망을 받습니다. 교회가 존재했고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 보시기에 죽은 교회였습니다. 사데 교회 안에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행위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정작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거하실 곳이 없었습니다. 신앙을 모두 잃어버렸고 이름만 교회라고 불렸습니다.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다시 시작하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보시기에 죽은 교회였지만 그 안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성도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힘든 가운데도 교회를 가슴에 품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부유했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교인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면 자연스레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듭니다. 두 가지가 함께 가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신앙이 미지근해진 것입니다. 무엇보다 라오디게아는 물사정이 좋지 않아서 인근 온천에서 물을 배달해서 먹었는데 수도관을 통해서 도시에 도착할 즈음이 되면 물이 미지근해지곤 했습니다. 또한 골로새에서 찬물도 배달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미지근해졌습니다. 오늘 본문의 미지근한 신앙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말씀을 두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뜨거운 신앙과 찬 신앙이 무엇인지 제 각각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본문의 초점은 미지근한 신앙을 책망하려는 것입니다.
생활이 편해지고 세상에서 가진 것이 많아지면 신앙이 미지근해집니다. 미지근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충 믿고, 형식적으로 교회 생활을 합니다.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두고 가련하고 벌거벗은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성공했지만 신앙적으로는 낙제점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입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세상 것들 보다 가장 위에 두는 것입니다. 받은바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