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50여년 전 수십만의 사람들이 미국전역에서 캘리포니아로 몰려왔습니다. 골드러시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스타트업이라고 불리는 벤처회사를 세우거나 그곳에서 일하기 위한 젊은이들이 실리콘 밸리와 샌프란시스코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2만여개에 가까운 회사들이 새롭게 시동을 걸고 트윗터나 페이스북처럼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합니다. 너도나도 서부로 몰려왔던 그 옛날 골드러시때와 달리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행보입니다. 그들의 꿈과 열정이 우리 지역에서 꽃을 피우기도 하고 또한 안타깝게도 소리 없이 사라집니다.
엊그제는 20대 한인여성 세 명이 세운 스타트업 회사가 미국은 물론 한국 언론에 일제히 보도되었습니다. 3천만 불에 회사를 팔라는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 것이 세간에 주목을 받은 것입니다. 8억불 매출이 가능한 회사를 헐값에 팔 수 없다고 당차게 말하는 것을 보니 이들이야 말로 노다지 금광을 발견한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이들은 여느 스타트업 창업자들처럼 매의 눈을 갖고 시장을 들여다보고, 아이디어를 내고, 밤낮없이 일했을 것입니다. 20대 젊은 여성들이 엄청난 회사를 세워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기업가들의 전유물이었던 창업이 젊은이들의 로망이 되어서 자신의 꿈도 펼치고 실제로 많은 돈을 버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읽기보다 안이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만 응답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교회를 젊은이들은 외면합니다. 지난 10여년 이상 동성애 문제를 두고 상당한 에너지를 쏟았지만 동성결혼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교회의 대패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교인들이 고령화되면서 교회에서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가나안 성도라는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믿지만 기존의 교회 행태에 식상해서 교회에 ‘안나가’는 젊은이들을 가리킵니다. 말 그대로 교회의 위기입니다.
작금의 미국과 한국 개신교의 위기는 1900년대 중반 영국교회가 경험한 것과 유사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부흥>이라는 책에서 당시 영국 사회를 다음과 같이 진단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은 평범한 책이 되었고, 여타의 책들과 똑 같은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성경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거룩한 책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더 이상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 하는데도 교회는 건물을 짓는 등 자기영역을 늘리는데 몰두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우리가 절제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한시가 급합니다”라고 교회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하지만 요즘 신문보도에서 보듯이 영국 교회는 거의 와해되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꿈꾸던 부흥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남 얘기가 아닙니다. 영국 교회을 비롯한 유럽 교회의 몰락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경종을 울립니다. 초대교회 시절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할례와 안식일을 주장하다가 결국 세상에서 사라진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부르시고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이방인 교회를 통해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변화하는 세상과 담을 쌓거나 안이하게 대처한다면 영국교회처럼 또한 유대교를 고집하던 예루살렘 교회처럼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것에 교회가 반응해야 합니다. 복음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매력적인 복음을 세상에 제시해야 합니다. 더 이상 성도들을 교회에 묶어두지 말고 세상 속으로 파송해야 합니다. 누룩처럼 세상 속으로 파고드는 선교적 교회, 선교적 그리스도인들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교리를 주입하기 보다 섬김과 희생적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듯이 다시금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라는 평판을 얻어야 합니다. 기업가들만 스타트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 교회들도 다시 시동을 걸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한시가 급할 수 있습니다. 2015년 새해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은 신앙과 교회의 새로운 스타트업일 수 있습니다. (2015년 1월 22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