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목사님들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그 중에 한 목사님께서 어렸을 적 교회에 갈 때마다 사찰 집사님이 부러우셨답니다. 늘 교회에 계시면서 교회를 돌보시는 모습이 훌륭하게 느껴지셔서 한 때는 사찰 집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데 이민 목회를 하다 보니 그 꿈을 이루셨다고 허허 웃으면서 말씀하십니다. 교회 문을 열어주고, 쓰레기를 치우고, 교회를 청소하는 것이 목회의 일부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부터 교회 청소를 즐겼습니다. 예전 고향 교회는 마루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가서 주일학교 아이들이 오기 전에 교회 마루를 물걸레로 청소하곤 했습니다. 시골 아이들이 오면 흙 발자국이 나고 금방 더러워지지만,그래도 교회 마루를 깨끗이 청소해 놓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물론 지금도 교회 청소를 즐깁니다. 토요일 아침에는 권사님 내외분과 함께 저희 부부가 이곳 저곳을 청소하면서 주일을 준비합니다. 주일 날도 예외가 아닙니다. 친교실의 식탁들이 잘 정돈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가로 세로 줄을 맞춰서 정돈합니다. 반 지하에 있는 친교 실에 음식물 냄새가 배어있을까 염려되어서 환기를 시키고, 열심히 걸레질을 합니다. 설거지 당번들이 잘 정돈해 놓지만 목사가 맨 나중에 정리할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깔끔을 떨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올 해 들어서 저희 부부가 토요일에 청소하는 것이 내심 안타까우셨던 권사님께서 파격적인 제안을 하셨습니다. 로봇 청소기를 사서 교회 청소를 로봇에게 맡기자는 것입니다. 우선 권사님 댁에서 쓰시던 로봇 청소기를 갔다가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권사님들이 로봇이 얼마나 청소를 잘할 지 반신반의 했는데 생각보다 청소를 깨끗이 해주었습니다. 로봇청소기를 마련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로봇 청소기 한 대를 구입해서 교회에 풀어놓았습니다.
요즘은 로봇 청소기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청소하는 토요일까지 바닥에 자잘한 부스러기가 남아 있어서 눈에 거슬리곤 했는데, 평상시에도 로봇이 청소를 해주니 교회가 늘 깨끗합니다. 로봇이 지나간 길은 축구경기장의 잔디 처럼 카펫에 일렬로 줄이 납니다. 감독하는 사람이 없어도 예배실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청소합니다. 저와 아내는 로봇을 따라다니면서 말도 걸고, 혼자 두고 나올 때는 ‘바이’하고 인사도 합니다. 이름도 “로비”라고 지어주었습니다.
교회를 청소하는 로봇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도 얻습니다. 무엇보다 교회 일은 말없이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로봇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배터리가 있는 동안 쉬지 않고 일합니다. 교회 일 하면서 공치사하고 때로 불평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로봇은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열심히 청소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의식하거나 자랑하고 칭찬받기 위해서 일하는 우리네 모습과 대조적입니다. 로봇은 배터리에 힘이 다 소진되면 충전 스테이션을 찾아와서 차분하게 배터리를 충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치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불평하거나, 심하면 상처받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로봇은 말없이 제 발로 충전기를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도 그래야 합니다. 힘들고 지치면 말없이 하나님께 나와서 힘을 얻을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도리인 것을 로봇이 깨우쳐줍니다.
여기저기 의자와 벽에 부딪쳐서 이마가 벗겨지면서도 말없이 청소하는 로봇을 보고 있으니 괜스레 겸연쩍어 집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일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힘을 다해서 말없이 해야 함을 로봇을 통해서 다시금 배웁니다. 그나저나 교회를 청소하는 특권을 로봇에게 빼앗겼으니 가끔씩은 로봇을 쉬게 하고 제가 손수 청소기를 돌려야겠습니다. 땀을 흘리면서 주님의 성전을 청소하고 정돈하는 기쁨과 보람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2015년 2월 26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