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은혜’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의지)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머리로만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없습니다. 은혜는 경험하고 느끼는 정(情)적인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 은혜에 감동하고 감격합니다. 우리에게 임한 은혜를 설명하려고 애쓰기보다 단순하게 느끼고 누리는 것입니다. 은혜 속에 들어가고, 은혜 속에 거하고,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던 과거의 사건부터 현재와 미래를 포함한 모든 삶에 은혜가 요청됩니다. 날마다 은혜가 필요하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 종일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아니 그 모든 것이 은혜임을 확신하고 은혜를 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그리워했지만 결국에는 유다(“찬송”)를 낳고 하나님을 찬송했듯이 말입니다. 은혜로 사는 삶에 힘이 있습니다. 은혜로 사는 삶에 용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모험도 감수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이고 은혜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은혜로 사는 삶 속에 주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은혜 가운데 주님과 동행합니다.
은혜로 사는 삶에 치유와 회복도 있습니다. 앞에서 은혜는 느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어진다고 고백합니다. 은혜가 우리 안에 부어질 때, 마음속에 있는 상처와 쓴 뿌리가 치유되고 새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뜨겁게 경험하기 원합니다. 온 교회가 은혜 속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주일예배뿐만 아니라 주일 이후의 6일 동안 가정과 세상 속에서 은혜를 경험하고 그것을 간증하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내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과 그 일행이 나인성에 들어가실 때 장례행렬을 만나셨습니다. 나인성에 사는 어떤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서 장례를 지내러 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그 과부를 보셨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측은지심입니다. 울지말라고 말씀하시면서 관에 손을 대시고 아이를 살려내셨습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본문 속에서 나인성 과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일하실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외아들을 잃은 과부를 측은히 여기시면서 찾아가셨고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