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년 전에 하나님께 가신 어머니의 기일(忌日)입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던 날은 주일이었습니다. 주일예배를 가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매우 화창했습니다. 어머님께서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영주권 절차 때문에 발이 묶여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 통화할 때 어머니 목소리에 힘이 남아 있어서 그래도 안심이 되던 차였습니다. 그날 따라 언덕 베기에 피어있는 갈대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어머님의 영혼을 꼭 붙들어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고 집에 왔는데 한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머님께서 하나님께 가셨다는 것입니다. 막내가 한국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을 알았기에 “시용이 오라고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가셨답니다. 끝까지 막내를 배려하신 것입니다.그날 저는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마흔 셋에 나셨습니다. 요즘은 결혼들을 늦게 해서 40대 이후에 아기를 갖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어머니께서 저를 낳으시던 60년대 초만 해도 꽤 노산(老産)이셨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는 무명 천으로 된 한복을 입고 머리에는 쪽을 찌고 계셨습니다. 친구들 가운데 어머니가 가장 연로해서, 어머니보다 큰 누님이 학교에 오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머리를 커트하고 파마도 하시면서 멋쟁이 신여성으로 변하셨지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다고 하지만 저 역시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말 그대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늘 제 편이셨습니다. 학창시절 시험을 못 봐서 시무룩해 있으면 “그까짓 시험 못 보면 어떠냐?”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30대 후반에 유학 길에 올랐습니다. 여든이 되신 어머니가 사랑하는 막내 가족을 미국으로 보내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제 발걸음도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출국하는 날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끝까지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사내가 울면 안 된다. 어서 가서 공부하고 와라”며 한 치의 떨림도 없이 또박또박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희 가족이 떠난 후에 창문을 바라보면서 서럽게 우셨답니다. 그래도 전화를 걸 때마다 “타지에서 애들 데리고 밥 굶으면 안 된다. 쌀은 떨어지지 않았냐? 여긴 걱정하지 말아라”고 하시면서 저희를 염려하셨습니다. 정말 최고의 어머니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께 가신 어머니가 잊혀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그리워집니다. 어머니께서 베풀어주신 사랑들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어머니에 대한 감동적인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들에게 두 눈을 주셨지만 여섯 가지 기능을 탑재해 주셨답니다. 두 개의 눈은 “너 거기서 뭐하고 있니?”라고 물으면서 자식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눈입니다. 다른 두 개는 못난 자식들을 보면 한없이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자식을 가슴에 품은 채 무릎 꿇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입니다.나머지 두 개는 자식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을 때도 “엄마는 너를 이해해. 엄마가 너 사랑하는 것 알지?”라고 말하며 아이를 바라보는 눈입니다. 물론 어머니들에게는 자식이 배가 아프다고 떼굴떼굴 구르면 무릎에 눕혀놓고 “엄마 손은 약손”하면서 배를 문질러 주는 기적 같은 손도 보너스로 장착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던 천사가 물었답니다. “하나님 그런데 실패작이에요. 얼굴에서 물이 새고 있어요.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어서 새잖아요. 이제 어떡해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그건 물은 물인데 특별히‘눈-물’이라는 거야. 엄마들이 낙심되거나 속이 상할 때, 종종 외로울 때 나오는 거란다. 참-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울 때도 나오는데 그때는 왜 나오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허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강한 분은 어머니이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엄마”라고 부를 때입니다. 세상의 어머니들을 응원합니다. 특히 작년 이 맘 때 세월호 사고로 자식을 잃고 일 년 동안 눈물로 사신 어머니들께 주님의 위로와 힘이 임하길 바랍니다. 세상 어머니들의 눈에서 기쁨과 감격의 눈물만 나오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어머니 기일인 오늘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엄마”하고 불러봐야겠습니다. 어머니, 참 많이 그립습니다. (2015년 4월 30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