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 부른다

구약성경은 토라라고 불리는 모세오경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록한 역사서, 지혜문학이라고 불리는 성문서와 예언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한가운데 성문서가 위치한 셈입니다. 욥기부터 시작해서 아가서로 끝나는 다섯 권의 성문서들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욥기는 선한 사람도 고난 받을 수 있는 세상의 현실을 고발합니다. 시편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 즉 하나님 백성의 예배입니다. 전통적으로 솔로몬이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나머지 세 책은 하나님 백성들이 걸어가는 인생 여정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젊었을 때 기록했다는 아가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 지 알려줍니다. 전도서는 노년의 솔로몬이 지나온 인생을 조망하면서 젊었을 때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충고합니다. 아등바등 힘들게 살아봐야 인생사가 도찐개찐이고 헛될 뿐이니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누리면서 기쁘게 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내려다보면서 작은 것들에 연연하지 말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큰 걸음으로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가장 지혜로울 때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잠언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구체적인 교훈입니다. 잠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크마’는 일반적인 의미의 지혜를 넘어서 삶 속에서 요청되는 재능 또는 기술까지 포함합니다. 잠언의 지혜가 매우 실용적임을 뜻합니다. 잠언 속에는 현실의 삶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씀들로 가득합니다. 손이 게으르면 가난이 밀려옵니다. 입술을 지키지 못하고 함부로 험담하거나 필요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속이는 저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지만 공정한 추는 기뻐하십니다. 이처럼 잠언은 구절마다 독립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한두 구절을 따로 떼어서 읽어도 말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원래 고대 근동의 잠언 또는 지혜 교육은 왕궁에서 이뤄졌습니다. 왕을 비롯해서 고관대작들의 자제들이 유명한 지혜 교사를 모셔서 과외를 받는 식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의 잠언은 교육의 자리를 가정으로 옮겨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잠언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때로는 사람처럼 의인화된 지혜가 서민들이 사는 시장통에서 그들을 부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잠언의 마지막 장은 현숙한 여인으로 끝이 납니다. 가부장적인 고대시대에 여인의 삶을 높이 평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잠언속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잠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크마’도 여성명사입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의 잠언은 특정 계층을 향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지혜로 초대합니다. 이것이 구약 성경 잠언의 묘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잠언 말씀은 통쾌합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가졌던 애매함이 잠언에 오면 모두 풀어집니다. 악인과 의인을 대조하면서 악인에게는 화가 임하고 의인에게는 복이 임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인과응보의 신앙입니다. 신앙의 길을 단순하게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현재는 복잡해 보여도 끝이 있다는 종말론적 의미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잠언은 또한 세상의 삶을 긍정합니다. 재물을 갖고 친구를 사귀랍니다. 재물이 많으면 아무래도 세상에서 편하게 살 수 있고 그것 역시 복이라고 알려줍니다. 하지만 지나친 부는 도리어 화가 됩니다. 말을 절제하고 좋은 사람을 사귀고, 부지런히 일하면 살맛 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이라면 세상 속에서도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구약 성경 잠언에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나 기도에 대한 교훈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 장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빗장을 단단히 걸어놓고 시작합니다. 잠언말씀이 실제적이고 때로는 현세적으로 보여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백성들의 거룩한 삶입니다. 잠언의 지혜가 우리를 부릅니다. 올가을에는 잠언 말씀을 차근차근 묵상하면서 하늘의 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5년 9월 24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