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

지존자의 오른손

 

기도를 우리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에 간청이 있지만, 그것이 기도의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사귐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되고 소통하는 신비로운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듣는 시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깊이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자라 가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해서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물론 그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었지요.

 

우리가 살펴보는 시편 77편의 시인도 고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가 겪고 있는 고난은 칠흑같은 어두운 밤입니다. 그때도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사람의 도움과 위로를 물리치고 하나님 안에서 씨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혹시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는지, 은혜를 그치셨는지, 사랑을 주지 않으실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묻습니다. 그 힘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 은혜와 긍휼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누구나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8-11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기록했습니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받아서 살아갈 소망도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어려움을 이겼습니다. 시편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시편 77편 10절은 시인이 터닝 포인트를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10절의 히브리어 본문은 쉽지 않아서 다양한 번역이 존재하는데 저는 “이것이 바로 나의 아픔, 나의 약함입니다. 그런데 지존자의 오른손이 변화시키셨습니다.”로 옮겼습니다. 개역 개정에서 “잘못”이라고 번역했는데 “슬픔, 아픔”이라는 뜻도 있고, “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에 “변화”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어려움 한가운데서 자신의 약함과 아픔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을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다시 한번 자신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묵상하고 자신의 말로 읊조립니다.

 

시편 기자는 변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오른손이 그를 변화시키고 보호하셨기에 마음에 빛이 비쳤습니다. 지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우리 역시 약함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이 임하실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내면의 깊은 신앙으로 나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안누스 미라빌리스

좋은 아침입니다.

 

1.

“안누스 미라빌리스 (Annus Mirabilis)”라는 라틴어 표현이 있습니다.

<기적의 해(a year of miracle)>라는 뜻입니다.

놀라운 해(wonderful year)

경이로운 해(amazing year)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아이작 뉴턴에게

1666년이 바로 기적의 해였습니다.

 

그때도 런던에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런던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우리처럼 자택 격리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뉴턴도 캐임브리지 대학이 문을 닫으면서

가족이 있는 시골로 내려갔는데,

전염병을 피해서 고향에서 지내던 2년이

그에게 <안누스 미라빌리스, 기적의 해>였습니다.

 

고향에 갇혀 지내는 동안

프리즘의 원리, 중력의 법칙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뉴턴이 고향집 자기 방에서 누워있을 때,

유리창의 작은 구멍으로 빛이 들어와서 반사되는 것을 보고

프리즘의 원리를 발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답답하고 미래가 꽉- 막힌 팬데믹이

연구에 대한 뉴턴의 열정을 막지 못했습니다.

아니, 더 큰 업적을 내는 기적의 해가 되었습니다.

 

2.

<실락원(Paradise Lost)>이라는 유명한 작품을 남긴

존 밀턴 역시 1626년 대학 1학년 때

가렛톳 패스트(bubonic plague)라고 불리는 전염병이 돌아서

학교가 문을 닫고 런던에 있는 자택에 격리되었습니다.

 

밀턴은 그때 친구를 위한 시를 썼는데

훗날 밀턴의 문학에 커다란 기초를 놓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밀턴의 인생은 역경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최고 역작 <실락원>을 쓸 때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

그의 딸에게 불러주며 대서사시를 완성했습니다.

 

밀턴은 실락원 속에서

비록 낙원은 잃었지만

힘을 합쳐서 다시 시작하려는 가능성의 문도 열어 두었습니다.

 

 

3.

팬데믹(pandemic)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all people”이라는 뜻의 그리스 말에서 왔습니다.

 

에피데믹(Epidemic)은

전염병 같은 재앙이 국지적으로 위로 솟아나듯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고

팬데믹은 모든 사람이 함께 겪는 재난을 가리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기약 없는 팬데믹을 살고 있습니다.

한편 생각하면 빛이 없는 깜깜한 어둠입니다.

여행은 물론 예배와 모임의 자유까지 빼앗긴 포로 생활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의기소침하지 말고

<안누스 미라빌리스>를 살았던 선배들을 생각하기 원합니다.

 

뉴턴이나 밀턴에 비교할 수 없어도

각자 있는 자리에서 팬데믹 기간을

“기적의 해”로 만드는 것이지요.

 

갇혀 있지만 나름대로 창조적인 시간(카이로스)을 살고

훗날 교회와 세상이 다시 회복되었을 때

서로 나눌 각자의 이야기를 많이 만들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2020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는 요즘

하나님과의 이야기로

우리 신앙과 삶이 비옥해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누스 미라빌리스 Annus Mirabilis!!!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 36:9)

For with you is the fountain of life; in your light do we see light.(Ps 36:9)

 

하나님,

참빛 식구들의 마음에 삶에 빛을 비추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8. 6이-메일 목회 서신)

 

2020 기도 (2)

밤에 부르는 노래

 

16세기의 수도사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백성에게 영혼의 밤을 허락하십니다. 누구든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합니다. 그 밤을 통과하면서 감각적인 신앙이 깊은 영성을 갖게 되고, 욕심과 교만을 내려놓고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섬깁니다. 영혼의 깊은 밤을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경험하고 비로소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시편 기자 역시 영혼의 깊은 밤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도 한숨이 나오고 힘이 빠질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의 위로를 거절하고 하나님 앞에서 씨름합니다. 밤중에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것이 그의 신실한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 그대로 “밤에 부르는 노래”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 어려운 상황 속에도 행여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잊으시면 어쩌나 염려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두고도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4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1-3절에서는 “내가”가 주어였는데, 4절로 넘어 오면서 “주님”이 주어가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잠을 이룰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지나온 세월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행여나 자신의 잘못이 있었는지 자신의 과거를 반추했을 것입니다. 고통이 찾아오면 과거를 돌아보기 마련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우울해지고 돌이킬 수 없다는 마음에 실망에 빠져드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연속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긍휼)를 잊으셨는가?”(시77:7-9). 그의 질문 속에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의 성품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은혜, 인자하심, 약속을 지키심, 긍휼.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께 불평하고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신앙을 확인합니다. 의심이 생겨도 하나님 안에서 회의하고 질문합니다. 하나님 품으로 달려들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닥친 문제를 풀려는 신앙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원합니다. -河-

세 가지 규칙

좋은 아침입니다.

 

1.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무려 70년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 가운데 기다렸습니다.

 

동시에

예루살렘이 왜 멸망했는지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신앙을 다시 추스르면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구약성경 상당 부분의 편집을 마쳤습니다.

 

느헤미야 8장에 의하면

에스라가 율법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오는데

많은 학자들이 모세 오경이 정경으로 완성된 때라고 봅니다.

 

2.

우리는 포로로 잡혀가지 않았지만

넉 달 이상을 집에서 격리되어 살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

말씀과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히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으니

기도에 깨어있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경험하기 원합니다.

 

또한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고 설계할 수 있다면 더욱더 좋겠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세 가지 단순한 규칙(three-simple rules)을 제시했습니다.

 

가능하면 (if we could),

1)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면 안 됩니다 (No harm)

2) 선을 행해야 합니다 (Do good)

3)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Stay in love with God).

 

그리스도인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훼방꾼이 되거나,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선하고 바르게 작동하는데 참여하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고, 그 사랑을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간단한 규칙이라고 했지만,

이 세 가지 규칙을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면,

팬데믹 기간은 물론 그 이후의 삶이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3.

집에 포로로 잡혀 있는 듯한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보내기 원합니다.

 

No harm, Do good, Stay in love with God.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And let us not grow weary of doing good,

for in due season we will reap, if we do not give up.(Gal 6:9)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닮고 선한 길을 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7. 30이-메일 목회 서신)

2020 기도 (1)

내가 내 음성으로 (시편 77: 1-3)

 

지난주에 성령에 대한 말씀을 마무리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어머니 마음과 손길처럼 느끼고 성령을 쫓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위로와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할 위력, 일을 끝까지 해내는 힘, 자신감과 무기력을 떨치고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성령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과 은혜 그리고 힘이 실제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부터는 시편 77편을 차근차근 연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월터 부르그만이라는 구약 학자가 팬데믹을 보내는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메시지에서 시편 77편을 인용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는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그것을 시편 77편에서는 “밤에 부른 노래”라고 했습니다.

 

기약 없는 팬데믹을 사는 이 시간도 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새벽을 기다리지만, 새벽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깜깜한 밤입니다. 여름이 되고 기온이 올라가면 바이러스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지만, 바이러스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감염자 숫자가 뉴욕을 넘어섰다는 보도를 보면서 마음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밤을 사는 우리의 심정입니다.

 

시편 77편의 기자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둠의 기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을 믿기에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나와서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77편 1-3절에 시편 기자 자신을 가리키는 일인칭 단수 “나”가 열 번 등장합니다. 시편 기자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의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하나님 귓전에 우리의 기도가 도달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시편 기자는 밤에도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어려움이 닥치자 손에 있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뻗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삶에 드리운 불안과 근심으로 심령이 상했지만, 그 순간에 하나님께 나와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손을 들고 우리 자신의 음성으로 기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한다는 표시입니다. 인생의 밤이 너무 깊으면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때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니 성령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과 삶을 내어 맡기면 됩니다. 한 주간 내 목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합시다.-河-

교회 앞

좋은 아침입니다.

 

1.

예배로 모이지 못한지

넉 달이 넘어갑니다.

 

교회는 잘 있습니다.

예배실은 물론

아래층 친교실도 상쾌하도록 가끔 청소하고,

뒤꼍 아이들 방에 먼지가 덮이지 않도록 걸레로 닦아 줍니다.

 

그래도 우리 교인들의 발길이 뜸하니

거미들이 이곳저곳에 줄을 치고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에클레시아 (부름받은 성도들의 모임)>라는 말 그대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임을 실감합니다.

 

2.

우리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를 강조했습니다.

 

교회 모임을 많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주일 공동체 예배에 집중하고

나머지 6일 동안은 가정과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기로 약속했습니다.

 

대신,

주일에 모여서 함께 예배하고 친교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세상에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기를 기대했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회가 흩어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모임이 적은 우리 교회도 힘든데

일주일 내내 모임이 많던 교회들은 꽤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교회를 흩어 놓는 것에도 뜻이 있겠지요.

 

 

3.

교회에 흐뭇한 일도 생겼습니다.

 

우리가 예배로 모이지 못하는 동안

교회 앞 정원에는 예전에 없던 과일들이 많이 열렸습니다.

 

가지가 휠 정도로 사과가 열리고

우체통 옆에는 배, 자두, 사과가 다닥다닥 붙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정도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자연이 살아난다고 하더니

그 말이 우리 교회 앞 과일나무에도 임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 앞 도로가 한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거리에 서 있는 자동차들이 발진할 때 매연이 많이 나와서

길가 나무며 꽃이 죽곤 했는데 올해는 교통편이 훨씬 줄었습니다.

 

샌프란 공기도 좋아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침에 내리는 이슬이 맑은 공기와 합쳐서

나무들이 많은 열매를 맺도록 도운 것 같습니다.

 

4.

세상일이 모두 나쁠 수는 없습니다.

 

교회들이 너무 모임을 강조하니

팬데믹 기간 동안 저절로 흩어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공기가 맑아지면서

도심의 과일 나무도 신이 나서 열매를 맺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꾸 좋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되고

부정적인 뉴스나 소식에 민감하게 됩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세상 한 가운데서 여전히 선하고 진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포착하기 원합니다.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길이 되심을 믿고

오늘 하루도 감사로 시작합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Rejoice always, pray without ceasing,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the will of God in Christ Jesus for you.(1Thes 5:16-18)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에게 생명과 길이 되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7. 23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