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고난

베드로의 편지를 읽고 있는 소아시아의 흩어진 나그네들은 예수님을 믿고 나서 형편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려워졌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잠시 머무는 거류민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그들의 뿌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으로 옮겨졌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해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고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룩한 길을 갈 것을 명령합니다. 거짓된 것을 버리고 산 돌이신 예수님을 모퉁이도 삼아서 집을 지을 것을 요청합니다. 거룩한 나라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에 선포할 것을 부탁합니다.

 

흩어진 나그네로 살면서 한 몸을 추스르기도 힘든데 하나님을 전파하라는 명령이 힘겨워 보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피 뿌림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힘든 길을 기쁨으로 걸어갑니다. 그 길의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거류민과 나그네로 살기 위한 구체적인 교훈도 제시합니다.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욕심을 제어해야 합니다. 악하다고 비방하는 세상 사람들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만큼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시민의 의무를 다하면서 세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자유를 악한 곳에 쓰지 말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데 사용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심지어 악하고 까다로운 상전을 만났어도 그에게 순복하면서 세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여정이 쉽지 않습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을 때가 다반사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고난 받는 것을 모두 보고 계십니다. 따라서 어떤 고난이 닥쳐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내하고, 도리어 선을 행해야 합니다.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은 필수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을 견디는 것입니다. 고난과 더불어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아무 죄없이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우리도 간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조롱을 받으시면서 그 길을 닦아 놓으셨으니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면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은 예수님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슬픔을 견딥니다. 고난 속에서도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에 전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기 원합니다.-河-

사는 동안에

좋은 아침입니다.

 

성경 통독이 전도서에 와 있습니다.

앞으로 예언서를 지나면 신약성경에 도착하게 됩니다.

 

통독할 때 마다 느끼는데

전체 성경 가운데 구약의 분량이 꽤 많습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구원의 역사가 그만큼 길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시계추를 맨 끝에 갖다 놓고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말씀입니다.

 

너의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12:1)

– 전도서 말씀의 주제입니다.

 

저는 여기서 “청년의 때”를

누구에게나 가장 젊은 “지금 이 순간”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2.

전도서 3장 12절은 짧지만

마음에 깊은 울림과 실제적인 도전이 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새번역)

I perceived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them than

to be joyful and to do good as long as they live;(Ecclesiastes 3:12)

 

주일에 살펴보는 베드로전서 말씀도

“우리가 누구인가”로 시작해서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변입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랑이 되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그 가운데 한 가지 비결로

“기쁨”과 “선행”을 제시합니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길과 진리와 생명을 얻은

신앙의 기쁨을 생각했습니다.

 

그 기쁨이 우리 안에 넘쳐서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이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선행일 것입니다.

역시 신앙과 삶의 통합이자 연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주님 주신 은혜 속에서 기쁘게 살기 원합니다.

세상 속에서 좋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살기 원합니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새번역)

I perceived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them than

to be joyful and to do good as long as they live;(Ecclesiastes 3:12)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 하루

기쁘고 선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7.20이-메일 목회 서신)

거류민과 나그네

베드로전서 첫 구절에 나왔던 나그네라는 말이 오늘 본문인 2장 11절에 다시 등장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거류민”이라는 표현이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나그네와 거류민은 정착민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임시로 거주하는 사람들로서 본토에 대한 소속감이나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을 향해서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소아시아에서 낯선 사람들 취급 받으며, 본토인들 사이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베드로의 애틋한 심정에서 우러나온 표현입니다.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유대인들만 모이는 회당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유대인 공동체를 떠나야 했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동족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도리어 배신자라고 손가락질당했을 것입니다. 매우 외롭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로마 시민으로 살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사정이 비슷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공동체에서 퇴출당하고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세상에서 일상의 삶을 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생업에서도 손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모퉁잇돌 삼아서 신앙과 인생의 집을 세워갔습니다. 세상 속에서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기를 자처했고, 마음 깊은 곳에서 기뻐하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처럼 세상 속에서 거룩한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거류민과 나그네”는 구약 성경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가 죽자 막벨라 굴을 묘지로 구입하면서 헷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던 표현입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창23:4). 삶의 터전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이주한 아브라함 역시 거류민이자 나그네였습니다. 이밖에도 성경에 속에는 하나님 백성을 나그네로 소개하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백성은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그 삶이 쉽지 않아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육체가 아닌 영혼을 쫓아 살기를 권면합니다. 구별된 삶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것을 요청합니다. 장차 얻게 될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산소망을 가슴에 품고 힘차게 살라는 부탁입니다.-河-

레갑 족속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기도회에서 예레미야서를 읽는 중에

“레갑 족속(the Rechabites)이라는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예레미야 당시에 레갑 사람들은

바벨론 군대를 피해서 예루살렘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전의 한 방으로 초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주가 가득 든 항아리를 가져다가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다음과 같이 자신의 조상 요나답의 말을 전합니다(렘35:6-7).

 

– 너희는 물론 자손들도 포도주를 먹어서는 안 된다 (거룩한 삶의 표시)

– 집도 짓지 말고 곡식의 씨도 뿌리지 말고 포도나무도 심지 말고 유목민으로 장막에서 살아라.

– 그러면 나그네로 사는 땅에서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해 주실 것이다.

 

레갑 족속은 그들의 조상 요나답이 가르쳐준 전통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레갑 족속의 구별된 삶은

아브라함과 모세의 전통을 저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과 비교됩니다.

 

2.

레갑 사람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레갑사람들은 양을 치면서 이곳저곳을 다니는 유목민이었습니다.

이집트 왕자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고

그곳에서 겐 족속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을 아내로 맞게 되는데,

레겝 사람들이 겐 족속(the Kenites)에서 왔다고 봅니다 (역대상 2;55).

 

레갑 사람들이 최고의 조상으로 여기는 요나답에 대한 말씀이

열왕기하 10:15-17에 나옵니다.

 

엘리야가 세운 예후가 잔악했던 아합왕의 가문을 치러갈 때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요나답)”에게 함께 가서 의로운 일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 여호나답이 기꺼이 예후를 도왔습니다.

 

레갑 사람들은

이스라엘 정통 가문이 아니었지만

의로운 일에는 힘을 합쳤습니다.

 

무엇보다 3백여년 동안

조상 요나답이 전한 말을 그대로 지키며 살았습니다.

정착민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구름처럼 떠다니는 장막 생활을 했습니다.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으면서 거룩함을 실천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들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3.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왜 후손들에게 나그네 삶을 살라고 했을까요?

 

자신들의 본업인 유목민의 삶을 지속하라는 뜻일 겁니다.

조상 대대로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언제나 큰 귀감이 됩니다.

 

장막에서 지내는 유목 생활은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착하지 않으니 세상에 마음을 둘 수 없고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기에

나그네 삶을 살라고 부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레갑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렘35:19)

 

자신의 길을 지속적으로 걷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는 더욱 어렵습니다.

 

다른 것들은 시대에 따라서 변하고 적응해 나가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한결같기 원합니다.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와 같은 상록수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예레미야가 레갑 사람의 가문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의 모든 규율을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였도다 (렘 35:18)

you have obeyed the command of Jonadab your father

and kept all his precepts and done all that he commanded you (Jer 35:18)

 

하나님 아버지,

나그네 인생길을 걸으면서

레갑 사람들의 신앙을 본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7.13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교회

새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반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표어로 시작된 우리 교회의 올해 사역도 후반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무리하게 많은 일을 계획하지 않습니다. 모임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교회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데 힘을 주는 영적 주유소와 같은 곳입니다. 신앙의 종착점은 교회가 아니라 삶의 현장임을 명심하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반기를 맞으면서, 교회의 사역을 다시금 점검해 봅니다. 주일예배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참석하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새벽 기도회와 수요 예배는 권사님들께서 자리를 지키십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성경공부를 따로 개설하지 않기에 가능한 대로 수요 예배에 참석하셔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시길 부탁드립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속회에서도 힘닿는 대로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속회에서는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에 맞춰서 각자의 신앙 여정을 12과에 걸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청년부는 금요일에 만나서 성경을 공부합니다. 요즘은 예수님의 비유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기혼자 그룹을 위해서 목요일 저녁에 온라인 성경공부반을 개설했고, 필요에 따라서 기도원에 올라가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습니다. 참빛 보이스도 꾸준히 계속되어서 교회의 젊은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격려하기 원합니다. 4월부터 시작한 금요 찬양 예배를 통해서 찬양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원합니다. 찬양대와 찬양팀의 은혜로운 찬양에 매주 은혜를 경험합니다. 선생님들께서 우리 아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깊이 전해 주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실히 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필요에 따라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섬길 지체들이 있을 때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 제 목회와 우리 교회 사역의 특징입니다. 시도하다가 섬기는 분들이 부족하거나 힘들면 과감히 접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그래도 뒷전에서 궂은 일로 교회를 섬기는 손길이 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김치 담그기부터 교회 이곳저곳을 살피고 수리하시는 권사님, 주일 찬양대를 위해서 간식을 준비해 주시고, 주일 친교를 맡아 주시고, 안내하시는 권사님까지 섬김의 본이 되어 주십니다. 이렇게 교회가 세워집니다.

 

교회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정착하시고,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성도님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면서 우리 교회가 제사장 나라로, 택하신 주의 백성의 모임으로 자라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에 전하는 참빛 교회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하나님의 속마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부터 읽기 시작한

예레미야 30-33장을 일주일 동안

조금씩 조금씩 음미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성경 통독은 하루에 3장씩

꾸준히 달려가면서 읽는 방식입니다.

성경공부는

본문 말씀을 이리저리 생각하면서 고민하고 풀어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성경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 자 한 자 짚어 가면서 읽고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만나면

그 말씀을 붙잡고 한참을 멈춰 서 있는 것입니다.

 

2.

수요 예배와 새벽기도회에서

권사님들과 예레미야서를 읽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말씀이 거칠고, 비극적인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될 정도로 무겁습니다.

 

그러다가 위로와 소망의 말씀인

예레미야 30-33장을 만나서

사막 길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일주일을 머물면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를 맛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의 묘미는

소망의 말씀이 52장 한 가운데인

30-33장에 위치해 있다는 것입니다.

 

30장에 오기까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죄악상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눈물로 탄식하며 호소하는 선지자의 애원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33장이 지나면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무너지는 과정을

눈에 보듯이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히고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민족의 마지막 순간을

온 몸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3.

이처럼 비극적인 이스라엘 역사를 전하는 예레미야서 한 가운데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씨-처럼 들어있습니다.

아무 조건없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받아주시고, 회복하시고

돌이 아니라 마음에 새 언약을 새겨 주십니다.

 

예레미야서의 한 가운데 소망의 말씀이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속마음을 떠올려봅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때는 불평과 원망이 나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서 제 길로 갈 때도 많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진심(속마음)을 이해하면

다시금 신앙을 회복하고 주의 길을 걷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펼쳐져도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 “희망의 씨”를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속마음을 느끼고

우리도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기 원합니다.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예레미야 32:40-41)

And I will put the fear of me in their hearts, that they may not turn from me.  I will rejoice in doing them good,

and I will plant them in this land in faithfulness, with all my heart and all my soul. (Jer 32:40-41)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속마음을 그대로 느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7.6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