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람보르기니

좋은 아침입니다.

 

1.

가끔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배트맨 영화에 나올 법한 자동차를 만납니다.

그 위용에 “와”하는 탄성이 나옵니다.

아우디를 만드는 폭스바겐 계열사인

이태리제 “람보르기니/Lamborghini”라는 자동차입니다.

 

람보르기니는

또 다른 이태리제 고급 차인 페라리와 쌍벽을 이룹니다.

“무조건 페라리를 이겨라”는 창업자의 구호에 따라

람보르기니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정말 멋있습니다.

물론 가격도 우리 같은 서민은 언감생심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최하 20만 불에서 최고 3백만 불에 이릅니다.

 

2.

엊그제 미국 공용방송 NPR에

“폼페이 람보르기니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폼페이는 주후 79년

나폴리 연안에 있던 베수비오 화산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2천여 명이 목숨을 잃고,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덮였습니다.

 

16세기부터

폼페이 유적발굴이 시작되었는데

화산재를 맞고 얼음처럼 굳어버린 연인들,

거리의 주민들, 동물들의 형상이 유명합니다.

 

이번에는

폼페이의 람보르기니라고 불릴 정도의

호화스러운 전차 유물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동안 발견된 폼페이의 마차들과 차원이 다른 최고급 전차랍니다.

유물을 발견한 사람들이 얼마나 깜짝 놀랐으면

이태리 람보르기니를 생각해 냈을까요!

 

그런데

보도된 사진을 보니2천여 년이 지나면서 녹이 슬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아니라면 그 고급스러움을 알아채기 힘들게 변했습니다.

 

3.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최고급 승용차 람보르기니를 보면서

누가 저런 차를 타고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천 년 전,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폼페이를 헤집고 다니던 당시의 최고급 전차를 보면서

그때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2천 년이 지나고 나니,

그때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3백만 불이 넘는 이태리제 람보르리니도 언젠가는 같은 길을 가겠지요.

 

어제 읽은 마태복음 19장 23절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4.

지금도 고속도로를 누비는 21세기 람보르기니,

화산재로 덮이기 전까지 폼페이를 누렸던

폼페이의 람보르기니를 보면서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다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 생명, 복음, 그리고 사랑과 섬김

– 요즘 세상에서 잊혀 가는 가치들을 다시 붙잡고 싶습니다.

 

내 마음속의 람보르기니를 지우고

시간이 가도 절대 변하지 않는 “영원”을 살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작은 것까지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 깃든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섭리)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참새 한 마리가 얼마에 팔리는지,

우리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핵심을 붙잡고 싶습니다.

 

행여나, 세상 풍조에 밀려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고

복음이 주는 지혜와 행복을 꼭 붙드는 사순절이길 바랍니다.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없도다 (잠언 3:15)

She is more precious than jewels, and nothing you desire can compare with her. (Prov 3:15)

 

하나님,

세상 흐름에 휩쓸려가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3. 4 이-메일 목회 서신)

룻기 (4)

베들레헴에서

 

4장으로 구성된 룻기는 각 장에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서, 룻기를 연극 무대에 올린다면 1장부터 4장까지 4막의 연극이 될 것입니다. 룻기 1장의 주인공은 나오미입니다. 나오미는 잠언 31장에 나오는 “에셰트-하일, 강인한 여성”입니다.

 

고향인 베들레헴에 가뭄이 들면서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의 인도로 두 아들과 함께 모압 땅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습니다. 두 며느리와 셋이 살다가 고향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압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한 룻의 충성이 돋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오미와 룻 모두 “에셰트-하일, 강인한 여성”입니다.

 

룻이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작은 동네 베들레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온 동네가 떠들썩했을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나오미를 보고, “이 사람이 진정 나오미냐”(19절)고 수군거렸습니다. 여러 날을 며느리 룻과 함께 걸어서 왔으니 나오미의 모습은 더욱 더 형편없었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나서서 자신의 처지를 알립니다. 자신을 더 이상 “즐거운, 기쁜, 행복한”이라는 뜻의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쓰디쓴)”로 부르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엘-샤다이)께서 자기에게 고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풍족하게 모압으로 떠났는데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알고 보니 나오미는 베들레헴의 유력한 가문이었습니다. 재산을 정리해서 넉넉한 자금을 갖고 모압으로 이주했습니다. “내가 풍족하게 떠나갔더니”라는 나오미의 말이 증명합니다. 그런데 빈털털이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예전에는 풍족했는데 지금은 비었습니다. 나오미는 그 모든 것을 전능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나오미의 말을 들은 베들레헴 사람들의 반응은 본문에 없습니다. 쯧쯧 혀를 차면서 나오미를 동정하거나, 무시하거나, 수군수군 비난했을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오미의 과거는 화려했습니다. 그런데 모압에서 십여 년을 살고 돌아온 현재의 모습은 초라합니다. 현재는 아예 나오미가 없고 “마라”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깊은 골짜기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오미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미를 벌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오미에게는 모압 며느리 룻이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룻기 말씀이 흥미진진합니다. -河-

2021 사순절에

좋은 아침입니다.

 

1.

사순절(Lent)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력에서 사순절은

부활절을 기다리는 매우 중요한 절기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사순절 기간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고 구제하면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부터 십자가 죽으심까지

예수님의 삶을 닮으려 애썼습니다.

 

부활절에 세례를 받기로 예정된 분들은

사순절 동안 세례 교육은 물론

기독교인의 삶을 연습하면서 세례를 기다리고 준비했습니다.

 

2.

사순절을

모든 것을 금지하고 참는

금욕의 시간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수도원이나 세상에서 따로 격리된 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능할 수 있지만,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지나친 금욕은

자칫 위선적인 모습의 신앙이 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사순절의 정신을

“절제 (self-control)” 정도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지나칠 정도로 세상에 빠져 있었다면

삶의 축을 하나님께로 옮겨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에 몰두한 것이 있다면,

탐닉하는 것에서 빠져나와서 신앙과 삶의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경우가 있었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훈련(discipline)”도 사순절에 생각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길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처럼 지루한 천로역정입니다.

 

훈련하지 않으면

중간에 포기하거나 대충대충 믿기 쉽습니다.

 

기도와 말씀, 사랑의 실천,

배려, 신중함과 지혜로움, 근사함 등등 –

신앙의 덕목을 훈련해서 몸에 익히기 원합니다.

 

3.

사순절은

1년 365일 가운데 십 분의 일에 해당합니다.

 

삶의 십일조를 드린다는 마음으로

2021년 사순절을 맞기 원합니다.

 

팬데믹으로 흩어져서 사순절을 보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깊은 신앙,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신앙,

누가 보아도 구별된 성도의 신앙을 훈련하고 장착하는 사순절이기 바랍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 5:16)

In the same way, let your light shine before others, so that they may see your good works

and give glory to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Mat 5:16)

 

하나님,

사순절을 지나면서

참빛 식구들의 신앙이 깊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2. 25 이-메일 목회 서신)

룻기 (3)

– 베들레헴을 향해서

 

룻기 같은 이야기체 성경 본문을 네러티브(narrative)라고 부릅니다. 성경의 절반 이상이 이야기체 본문입니다. 네러티브에는 등장 인물이 나오고 이들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서 사건들이 일어나고, 사건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합니다. 그러니 네러티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등장 인물과 이들의 대화와 행동입니다.

 
네러티브는 구약성경의 신명기나 신약성경의 바울서신처럼 직접적인 교훈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등장인물과 이들의 행동, 변화, 등장인물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보면서 독자인 우리가 교훈을 얻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네러티브 본문은 읽는 우리 자신의 입장과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과 교훈이 가능합니다. 때로는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이야기 속에 자신을 대입하면서 성경 본문에 몰입하게 됩니다. 전형적인 성경의 네러티브인 룻기를 읽으면서 성경의 이야기체 본문 즉 네러티브의 힘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룻기의 서론에 해당하는 1장 1-5절을 살펴보았습니다. 베들레헴에 가뭄이 들면서 모압으로 내려간 나오미는 그곳에서 10년을 살면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간 곳이 죽음의 땅이 된 것입니다. 모압에서 얻은 두 며느리가 있었지만, 나오미는 홀로 되어서 모압 땅에 남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룻기 1장 6-18절은 베들레헴의 가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나오미가 모압의 삶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본문은 네러티브의 특징대로 나오미와 두 며느리 간의 대화가 주를 이룹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남편을 잃은 세 여성이 함께 떠나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얼마를 가다가 시어머니 나오미가 발길을 멈추더니 두 며느리에게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요청합니다. 모압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나오미는 타향살이의 힘듦을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향해서 왜 모압에 남아야 하는지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나오미의 설명을 들은 며느리 오르바는 모압에 남기로 합니다. 그런데 다른 며느리 룻은 나오미에게서 떨어지지 않겠답니다. 끝까지 나오미와 함께 가겠답니다. 결국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남편을 잃은 세 여인이 함께 동고동락하려는 마음이 귀합니다. 무엇보다 나오미에게 붙어서 함께하겠다는 룻에게서 합리적인 이유를 넘어서 끝까지 신앙의 길을 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사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갈보리 십자가까지 동행하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河-

성도

좋은 아침입니다.

 

1.

몇 주전,

아침마다 큐티를 전송하시는

어떤 목사님의 유튜브를 보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다음 하나님께 가시면

자신의 묘소에 “OOO 성도”라는 묘비를

자녀들에게 부탁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聖徒, 거룩한 무리/백성)에 해당하는

영어식 표현은saints입니다.

성자를 The Saint라고 하는데,

우리 일반 그리스도인들도 saints라고 부릅니다.

 

헬라어 <하기오스>역시

거룩하다는 단어에서 파생된 <성도>라는 뜻입니다.

 

2.

교회에서는 “성도”라는 말을

집사나 권사가 아닌 일반 교인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성도라는 말을 쓰거나 듣는 것은

초신자 같은 느낌이거나

교회에 오래 다녔지만

직분을 갖지 못한 분을 부를 때입니다.

 

말 그대로 ‘거룩한’표현인 성도가

직분을 가리키는데 쓰이는 것은 유감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성도”로 불리기를

기대하고 소원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다음 하나님께 가면

목사, 장로, 권사, 집사와 같은

이 세상의 직분은 아무 소용이 없고

우리 모두 “성도”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테니까요.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계19:8)

 

 

3.

기독교와 교회가 세상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요즘이기에

“성도”라는 말이 더 깊이 다가옵니다.

 

“성도”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단지 교회에서 직분이 없는 분을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성자”의 반열에 걸맞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의 본래 모습을 회복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하고 선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마5:16).

 

그 어떤 호칭보다

“성도”라고 불리길 바랍니다.

얼마나 근사하고 고귀한 말인지요!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 모두 거룩한 성도로 하나님 앞에 나가기 원합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계19:8)

 

 

하나님,

주님 백성의 거룩함을 회복하고

성도로 세상과 주님 앞에 서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2. 18 이-메일 목회 서신

룻기 (2)

– 모압 땅으로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구약성경의 룻기는 사사시대가 배경입니다:”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1:1). 수요예배와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듯이, 사사시대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옳은 대로 행하던 때입니다. 무엇보다 지도자격인 장로들, 레위인, 심지어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들까지 자기마음대로 행동했습니다. 누구 하나 온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룻기는 4장으로 구성된 매우 짧은 말씀입니다. 작게 보면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멀리 보면 이스라엘에 다윗이라는 최고의 왕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다윗은 곧 예수님의 조상이 되니 룻기가 성경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 룻은 이스라엘 출신이 아닌 이방 족속 모압 여인입니다. 모압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긴 하지만, 정통 이스라엘 여인이 아닌데 다윗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 특별합니다. 룻은 마태복음 첫 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룻기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 사는 엘리멜렉(“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과 나오미 (“나의 기쁨”) 가족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베들레헴에 기근이 닥쳤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에 기근은 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재난이었습니다. 엘리멜렉 부부는 두 아들 말론(“병약함”)과 기룐(“끝남”)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피난갑니다. 물이 있는 모압 땅에서 잠시 거주하다가 돌아올 계획이었습니다. 물론, 모압에서 살아가는 엘리멜렉 가족의 체류신분은 “나그네(게르 ger)”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엘리멜렉처럼 기근이 찾아왔을 때 외국으로 피난간 경우가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에 왔지만, 기근이 닥치면서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기근이 닥치자 그랄이라는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이방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들의 아내 사라와 리브가를 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간섭이 없었으면, 큰 일 날 뻔했습니다. 야곱도 기근이 들어서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기근을 피해서 모압으로 내려간 엘리멜렉 가족에게 힘든 일이 연거푸 닥칩니다.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어머니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습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인인 오르바와 룻과 결혼시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십년이 지났을 때 두 아들마저 죽습니다. 살기위해서 모압 땅으로 피난을 왔는데 그만 나오미만 홀로 남았습니다. 룻기는 이렇게 슬픈 나오미의 가족사로 시작합니다.

 

세상 일이나 인생사가 마음먹은 대로 펼쳐지지 않습니다. 설명이 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 지 룻기를 통해서 발견하기 원합니다. -河-

싱어게인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번 독서 모임 후기에서

한국의 한 TV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싱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그동안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가수로 활동했지만,

빛을 보지 못한 무명 가수들이

이름도 없이 1번 2번 30번 등 번호표를 달고 나와서

심사위원들 앞에서 경연을 펼칩니다.

 

독서 모임에서

<싱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이유는

출연자 중에 유명하신 목사님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모나 성품이 매우 점잖으신 목사님이신데

자세히 보면 목사님을 닮았고

자유분방한 것 같으면서도 질서가 있는 성품에

예사롭지 않았던 무명가수가 목사님 아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분이 부른 노래만 유튜브로 들었는데

기사를 보니 마지막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꽤 독창적인 노래를 부른 개성 있는 가수였답니다.

 

자신은 애매한 장르를 노래했고

방에서나 가수로 활동할 정도로 무명이었는데

프로그램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경연 프로그램이 자신을 세상과 맺어준 소개팅 자리였다고 했습니다.

 

2.

<싱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 명칭 가운데

“어게인/again”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경연에 출연한 수십 명의 가수들은

자칫 노래를 접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무명 가수로 있다 보면

자신감도 잃고, 노래를 계속할 의미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다시 노래할 기회가 찾아왔으니 얼마나 설렜을까요!

 

물론, 이번에도 주어진 기회를 잡지 못하고

다시 무명가수로 돌아간 분들도 있을 겁니다.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분들도 “어게인”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다시/again”라는 말은 꽤 매력적입니다.

 

잘못했거나 실수한 것을

다시 만회할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중요한 일은

다시 반복하면서 완전히 마스터할 수 있습니다.

 

인생길을 걷다 보면,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집니다.

그 기회를 잡는 것이 성경에서 말한 “세월을 아끼는 인생”일 것입니다.

 

2021년도 한 달 이상 지났습니다.

새해 첫날에 결심했던 것이 작심삼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시” 시작해 봅시다.

미국에 처음 올 때 가졌던 마음가짐도 해이해졌을 수 있습니다.

다시 처음 마음, 초심(初心)으로 돌아갑시다.

 

신앙에도 “다시”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기본을 잊어버리고,

기독교인 답게 살지 않고 세상을 쫓아간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안에 붙어있지 않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집니다.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악한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게인” – 그때마다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부활의 능력,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다시’ 되새기고 ‘다시’ 신앙의 기본을 다지기 원합니다.

 

“다시/ again”라는 말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 주신 새날을 시작합시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3-24)

 

 

하나님,

다시’ 시작하면서

우리의 삶을 정돈하고 온전한 하나님 백성으로 나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2. 11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