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 지토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동네 야구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짝 수년 마다 세 번 연속 우승했습니다.

2014년 이후로는 우승 소식이 없네요.

 

2010년과 2012년 우승할 때

선수로 뛰었던 베리 지토라는 선수가 최근에

“커브볼(Curveball)”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지토 선수는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투수로 활동했고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유명한 선수입니다.

 

지토는 자이언츠가 56년 만에 우승했던 2010년,

플레이오프 명단에 들지 못해서

밖에서 우승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지토는 그의 책에서

출전선수 명단에 들지 못했을 때

자기 팀인 샌프란시스코를 응원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해서

최근 며칠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

지토는 책에서 자신의 개인사도 솔직히 밝혔답니다.

지토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그의 의붓딸(step daughter)을 성폭행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지토에게 완벽함은 물론

세상에서의 성공을 강조했습니다.

지토 역시 아버지의 뜻대로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렇지만 늘 쫓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공에 연연했고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2010년 우승팀 선수로 뛰지 못한 것을 두고

자기 팀을 응원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지토의 멘토는 오직 한 사람 아버지였고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따랐습니다.

 

그런 지토가 마음을 돌이키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계기는

신실한 신앙을 가진 아내를 만나면서부터 입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주입한 세상의 가치관으로

성공 일변도의 길을 걷던 지토에게

하나님 아버지로의 귀환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행복과 새로운 인생관을 갖게 했습니다.

 

지토는 신앙으로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신앙이 주는 평안이 그를 사로잡았고

슬럼프를 이기고 다시 야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3.

탕자의 귀환이라는 설교를 나누고 있기에

지토의 인터뷰 기사가 더욱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출전하지 못한다고

56년만에 결승에 올라간 자기 팀을 응원하지 않았다는

지토의 고백은 솔직하게 들리면서도 충격입니다.

 

지토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모두 연약하고 불완전합니다.

우리 마음속의 생각은 어지럽고 밖으로 드러나면 부끄러운 것들도 참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기준점이 너무 많아서 매사를 상대적으로 판단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안과 힘, 그리고 위로를 구합니다.

하늘 아버지의 말씀을 ‘기준’ 삼아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인생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탕자가]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눅 15:20)

And he arose and came to his father. (Luke 15:20)

 

하나님 아버지

매일의 삶이

일어나서 주께로 돌아가는 귀환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9.19 이-메일 목회 서신)

탕자의 비유 (3)

탕자의 귀환 I

 

지난주 말씀을 통해서 우리 삶을 둘째 아들에 적용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둘째 아들을 보면서 말 그대로 “탕자(Prodigal son)”라고 비난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탕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존재나 삶이 하나님의 아들로 의롭게 되었지만, 여전히 둘째 아들 탕자의 삶을 살거나 생각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삶을 좌지우지 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의 모습입니다. 교만이 앞서면 하나님을 멀리하기 쉽습니다. 욕심 역시 우리를 탕자의 처지로 몰아넣는 주범입니다.

 

탕자의 삶은 겉보기에 멋지고 희망차게 시작하지만, 끝이 초라합니다. 하나님 없이 자유를 만끽하지만, 결국에는 날개도 없이 추락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하나님 없이도 나름 멋진 인생을 살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이라는 기준으로 우리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절망, 초라함, 영적 배고픔, 외로움입니다. 그 끝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비유 속의 둘째 아들 역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에 도취하였습니다. 막상 집을 떠나서 먼 나라로 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쁜 친구들, 가뭄, 돼지가 먹는 음식도 먹지 못하는 초라함이었습니다. 생명이 위협당할 정도의 위기상황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의 비극입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먹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둘째 아들이 비로소 자신을 돌아봅니다. 돌아서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돌아서지 않으면 그 앞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지만, 칠흑처럼 어두운 인생의 순간에 아버지를 떠올리고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는 것은 생명의 길입니다.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많이 있는데 괜히 아버지를 떠나서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아버지께 가서 어떻게 말할지 미리 연습합니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할 참입니다. “죄”는 하나님은 물론 아버지의 생각에 거꾸로 행한 것들입니다. 다시 아들로 대우해 달라고 말할 수 없어서 아들이 아니라 종으로 삼아 주길 부탁할 참입니다. 탕자가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생각과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아버지를 떠올리고 아버지께 돌아오는 둘째 아들은 행복한 탕자입니다. 하나님은 돌아오는 발걸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언제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탕자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한 주간 주님께 돌아가는 발걸음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다람쥐

좋은 아침입니다.

 

1.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집 근처에서 다람쥐를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이들과 다람쥐 잡는 내기도 했는데,

날쌘돌이 다람쥐를 잡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가을은 다람쥐에게 가장 바쁜 계절입니다.

겨울 동안 먹을 도토리를 땅속에 숨겨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사방에 묻어 놓는데

이듬해 봄까지 다람쥐가 찾아내는 도토리는 25% 미만이랍니다.

나머지는 도둑을 맞거나 어디에 숨겼는지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다람쥐는 후각보다 기억력을 사용하는데

워낙 많이 숨기기도 하지만,

건망증으로 숨긴 장소를 까맣게 잊어버린답니다.

 

다람쥐가 찾지 못한 도토리는 싹이 나서

도토리나무로 자란다니

생태계에 도움을 주는 다람쥐 건망증입니다.

 

2.

엊그제 CNN 뉴스에

다람쥐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가 또 하나 떴습니다.

다람쥐는 늘 몸을 쫑긋 세우고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사방의 적을 경계하듯이 나무와 땅을 오갑니다.

 

다람쥐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때가 있는데

스스로 감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 새들의 지저귐에 의존한답니다.

 

새들이 자유롭게 지저귀면

매와 같은 약탈자들이 사라지고

평화가 왔음을 감지하는 식입니다.

 

다람쥐처럼 예민한 동물이

스스로 위기를 느끼기보다

새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3.

지난주에 살펴본 탕자의 비유가 생각납니다.

 

아버지 재산을 모두 팔아서

먼 나라에 간 둘째 아들이 완전히 망가졌을 때,

그를 붙잡아 줄 아버지와 가족이 없었고

그에게 경고음을 들려줄 신앙도 없었습니다.

 

돼지 농장에 취업했지만

돼지에게 주는 쥐엄열매 조차 건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둘째 아들은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4.

비유 속의 둘째 아들을 보면서

우리를 지켜줄 가족과 친구가 필요함을 다시 느낍니다.

행여나 귀찮거나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붙잡아 줄 지킴이들입니다.

 

때로는 다람쥐처럼 영적 건망증이 도져서

하나님을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 신앙 말고도 쫓아갈 것이 많아서

신앙이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우리를 살리고 결국에는 회복시켜 주는 것이 신앙입니다.

 

인생길을 걷다 보면

신앙이 꼭 필요하고

신앙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을 분명히 만납니다.

 

우리를 지지해 주는 가족과 신앙의 동지들,

우리를 살리는 신앙을 꼭 붙들고

하루하루 살아갑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편 1절)

I lift up my eyes to the hills. From where does my help come? (Psalms 121:1)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도움이 되시고

이 세상을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9.12 이-메일 목회 서신)

 

 

탕자의 비유 (2)

잃어버린 아들(Prodigal son)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잃어버린 은전 하나,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입니다. 모두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고 공통적으로 기쁨의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세 가지 비유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도 중요하지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끝까지 찾으시는 분입니다. 한 사람도 놓칠 수가 없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소중합니다.

 

세 가지 비유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 탕자의 비유입니다. 비유 속의 아버지가 하나님을 뜻하는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탕자의 비유가 소개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만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감사하고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비유 속의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재산을 팔아달라는 둘째의 요청을 기꺼이 수락합니다. 재산을 팔아서 탕자의 삶을 살 것을 알면서도 재산을 건네주는 아버지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해서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기대하는 것인데 아버지는 진정한 사랑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비유 속의 아버지를 보면서 우리도 자녀들의 요구를 무작정 들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유 속의 아들은 상속을 받을 정도의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미성년 자녀들의 경우 적절한 훈육이 필요할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 재산을 팔아서 먼 나라로 갔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것입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참견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유를 찾아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먼 나라는 아버지는 물론 가족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곳입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곳입니다.

 

둘째 아들은 그곳에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자유를 누리며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기껏 탕자의 삶이었다는 것이 실망스러울 정도입니다. 갖고 있던 돈이 모두 떨어질 즈음 설상가상으로 가뭄이 들었고 둘째 아들은 간신히 돼지 농장에 취업했습니다. 돼지는 구약의 율법에서 부정한 동물입니다. 그가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졌음을 뜻합니다. 급기야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먹지 못한 채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의 삶은 자신의 기대와 정반대로 펼쳐졌습니다. 자유는 커녕 목숨을 걱정 해야 할 지경입니다. 탕자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떠난 존재의 비극을 발견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신앙의 자각(awareness)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서도 탕자의 모습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河-

헤세드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8월 24일

인디애나폴리스 콜츠(Colts) 풋볼팀의 쿼터백 앤드류 럭(Andrew Luck)이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겨우 29세이고

십억불 이상의 수입이 예상된 최고 쿼터백의 은퇴 선언이

지난주 스포츠계에 커다란 이슈였습니다.

 

앤드류 럭은 스탠퍼드를 졸업하고

2012년 1순위로 인디애나 콜츠에 지명되었습니다.

처음 3년 동안 팀을 연거푸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면서

농구의 레브른 제임스에 맞먹는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가로막은 것은 잦은 부상이었습니다.

공을 패스한 후에 상대편 수비수가 그를 넘어뜨리기 일쑤였고

그 과정에서 어깨는 물론 머리와 온몸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2017년 시즌은 통째로 경기를 뛰지 못했습니다.

 

앤드류 럭은 독서광이었다고 합니다.

올봄에 결혼해서 곧 아기 아빠도 됩니다.

그런데 아주 모진 성격을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부상과 치열한 경기로 그의 몸뿐만 아니라

더 경기를 뛰지 못할 정도로 마음도 피폐해졌습니다.

 

같은 팀 선수들도 그의 고민과 아픔을 알고 있었기에

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을 때, 그를 이해했습니다.

팀에서도 최대한 배려했고,

엊그제 인디애나폴리스 신문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팀은 물론 평생 자신이 사랑하던 풋볼과 아쉬운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는 풋볼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2.

모든 삶이 쉽지 않습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듯이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속 얘기를 들어보면 힘겹게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참고 가는 여정인데,

때로는 앤드류 럭처럼 막다른 골목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앤드류 럭이야 충분한 재력이 있어서 사는 데 문제가 없지만

우리는 당장 그만둘 수 없어 참고 또 참습니다.

 

그때마다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전폭적인 사랑,

우리의 전폭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은퇴도 아니고 포기나 도피도 아니고

우리를 끔찍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꼭 필요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지요.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 대한 연속 설교를 시작하면서

최고의 운동선수도 마음과 몸이 지쳐서 은퇴를 선언할 정도로

힘겨운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조건없고 전폭적인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믿어주시고, 기대하시며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헤세드>가 그립고

참빛 식구들과 이 사랑을 깊이 느끼고 싶었습니다.

 

막연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 헤세드는 꽤 실제적입니다.

위로, 치유, 힘과 용기를 줍니다.

 

탕자의 비유를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삶이 새롭게 되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갈 힘을 얻기 원합니다.

 

(혹시 지금 삶이 힘겨우시다면

잠시 멈춰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기도를 간절히 드립시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Fear not,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called you by name, you are mine. (Isaiah 43:1)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과 삶에 주의 사랑을 넘치게 부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9.5 이-메일 목회 서신)

 

탕자의 비유 (1)

아버지와 아들

 

지난 두 달여 구약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돌봄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의 돌봄과 은혜가 우리 교회와 참빛 식구들께 깊이 스며들길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돌봄으로 우리 삶을 가득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 힘으로 가정과 교회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길 원했습니다. 자신들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요즘 세상을 가슴에 품고 돌보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바랐습니다.

 

9월 한 달 동안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명한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팔아서 먼 나라로 떠난 둘째 아들, 동생이 돌아왔을 때 화를 내면서 아버지의 입장을 거부했던 첫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떠난 아들을 기다리며 빈손으로 돌아온 둘째를 사랑으로 맞아 주신 아버지 –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인물들을 차례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탕자의 비유하면 그 제목처럼 아버지 재산을 갖고 먼 나라로 떠난 둘째 아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탕자의 비유가 말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히브리어 <헤세드>, 헬라어 <아가페>로 표현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탕자의 비유 속에는 그동안 살펴보았던 하나님의 돌봄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재산을 갖고 먼 나라로 떠난 둘째 아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말 그대로 탕자(prodigal son)입니다. 둘째는 아버지 집에서 지내는 것이 지루했고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열심히 아버지 재산을 돌보는 형이 껄끄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찾아가서 자신에게 돌아올 상속분을 요구합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모은 재산이 아니라, 아버지 재산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상속분을 미리 요구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아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아버지입니다. 아들이 재산을 갖고 가서 어떻게 사용할지 훤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의 의사를 존중합니다. 아버지는 둘째가 어떻게 하든지 끝까지 그를 기다리시고 돌보실 참입니다. 둘째가 잘났거나, 재산을 갖고 가서 성공했을 때만 그를 아들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일을 벌이든지 상관없이 둘째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재산을 팔아 주었습니다.

 

비유 속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둘째에게 자신의 재산을 팔아준 아버지만큼 우리를 존중하십니다. 우리가 잘못할 줄 아시면서도 재산을 팔아 주신 것은 우리의 잘못을 책임지시겠다는 표시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한 주간 오늘 비유 속의 하나님을 이모저모로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원합니다. -河-

하나님의 돌봄 (8)

돌보는 교회

 

올해 우리 교회 표어인 <돌보는 교회>에 맞춰서 지난 7월부터는 하나님의 돌봄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의 돌봄이 우리 안에 충분히 임했을 때 자연스레 교회와 세상을 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을 빚어서 정성껏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갈빗대에서 아담의 돕는 배필 이브를 만드시는 모습 속에 하나님의 세심한 돌봄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당혹스럽고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면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은 양치기 목동 다윗을 찾아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카탄> 막내 다윗을 챙기고 돌보신 것입니다. 왕위에 오른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큰 죄에 빠집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지만, 그가 치를 죗값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둘째 솔로몬을 주시고 “여디디야(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비록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다윗을 위한 돌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돌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경계를 뛰어넘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계속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악독한 왕비의 고향인 시돈으로 가서 한 과부의 돌봄을 받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종교의 본산지인 시돈 땅 사르밧에 갔습니다. 마지막 음식을 만들고 생을 마감하려는 과부를 만나서 그의 돌봄으로 가뭄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르밧 과부를 돌보셔서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시돈 땅 사르밧 과부를 찾으신 하나님의 돌봄이 특별했습니다.

 

요나의 설교를 듣고 온 백성이 회개한 니느웨를 돌보신 하나님의 사랑도 성경 전체에서 특별했습니다. 아무리 니느웨가 회개해도 그곳 백성은 물론 짐승까지 하나님께서 돌보신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도 돌보셨습니다. 요나는 물론 우리의 선입관까지 뛰어넘은 돌봄입니다. 우리의 돌봄의 넓이가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는지 새롭게 느꼈습니다.

 

시편 142편 말씀은 돌봄을 실천하려는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원통함과 상한 심령을 아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을 때,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주의 구원을 볼 수 있고, 주의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도 돌봄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돌봄을 교회는 물론 세상과 나누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