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 (2)

오순절 성령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120명의 제자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한마음이 되어 기도하면서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로부터 10일 후 오순절(유월절에서 50일째 되는 절기)에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순절은 보리 농사를 짓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유대인의 3대 명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후대의 유대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켰습니다. 각지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강렬했습니다. 하늘에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제자들이 있는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눈에 보이더니 모여있던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예수님께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는 세례 요한의 말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하흐”와 헬라어 “푸뉴마”는 모두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숨결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마른 뼈로 가득했던 에스겔 골짜기에 바람이 불어오니 뼈들이 살아서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겔37). 예수님께서도 성령으로 난 자를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요3:8). 하늘로부터 내린 급하고 강한 바람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임을 확실히 알려줍니다.

 

불은 성경에서 심판의 상징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 상징입니다. 유대인들이 오순절이 되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모세를 기념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올라가 있던 산 전체가 불에 타는 것 같았습니다(출20:18).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걸을 때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던 제자들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혔습니다. 다른 민족의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예루살렘에 온 많은 민족에게 각자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창세기 바벨탑에서 각각의 언어로 분열되었다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같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니 3천 명이 예수님을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오순절 성경 강림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론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확신을 갖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했듯이, 우리 각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성령 충만해야 함도 깨닫습니다. 우리 위에 임하실 성령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한 주간 성령 하나님을 사모하고 우리 마음에 삶에 성령의 임재를 구합시다.-河-

미소

좋은 아침입니다.

 

1.
코로나 사태 초기에
미국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마스크쓰는 것을 터부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 마스크를 쓰는 경우는
사업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
일상생활에서 마스크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이 오면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되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코스코를 비롯한 마켓이나
은행과 같은 공공장소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예배가 시작되어도
당분간 6ft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될 것 같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바이러스 전파를 훨씬 줄일 수 있다니
우리 자신은 물론 이웃의 안전을 위해서 당연히 협조해야 합니다.

 

지난 몇 달 새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2.
그런데
마스크를 쓰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바로 “미소”입니다.

 

이전에는 눈만 마주쳐도 미소로 인사했습니다.

 

지금도 습관적으로 마스크 안에서 미소를 짓지만
서로 알아볼 수 없습니다.
조금 허전하고 삭막합니다.

 

백신이 나오고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면
모두의 얼굴에서 퍼지는 미소를
꽤 오랫동안 못 볼 것 같습니다.

 

3.
미소를 되찾아 올 때까지
다른 방법으로 이웃들과 소통해야겠습니다.
눈인사를 하거나
손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다가
우리의 마음도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마스크를 착용하는 동안
내면의 미소를 개발해야겠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내면의 미소는
이웃을 향한 배려,
섬김과 따뜻한 돌봄,
특별히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해주는 것,
이웃을 위한 간절한 기도 등입니다.

 

예전의 정상적인 삶을 기대하면서
새로운 노멀을 살고 있듯이
예전의 미소를 기대하면서
새로운 미소를 개발하면 좋겠습니다.

 

참빛 식구들 안에
새로운 미소가 꽃을 피우길 바랍니다.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신명기 24:21)
When you gather the grapes of your vineyard, you shall not strip it afterward.
It shall be for the sojourner, the fatherless, and the widow.(Deut 24:21)

 

하나님 아버지
힘들수록 참빛 식구들의 미소가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5. 28 이-메일 목회 서신)

성령 하나님 (1)

보혜사 성령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십자가 십자가>로 시작해서 지난주 까지 <부활 그 이후> 이제 오늘부터는 오순절 성령 강림과 성령강림 주간을 맞으면서 <성령님 우리 성령님>이라는 주제로 주일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주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예수님께서 친히 이루신 사역이고, 성령은 3년 공생애를 마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역사 속에서 일하십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2천년 전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죽음의 길로 달려가던 모든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에 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자 예수님은 실체 즉 육신을 입고 2천년 전 팔레스타인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활동 반경은 갈릴리와 예루살렘 100마일 정도에 그쳤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으니 그것만 보아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 하나님 부재(不在,absence)의 무법천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 노아 홍수 이전의 타락한 인류,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빛으로 특별히 선택하신 이스라엘의 배신까지 인간은 언제나 청개구리처럼 행동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속사역을 완성하고 거친 세상에 남겨진 하나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거룩한 영(靈, spirit)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표현 그대로 영이시니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하흐>는 바람 또는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와 위력을 느낄 수 있듯이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온화한 봄바람처럼 임하시고, 때로는 폭풍처럼 몰아치십니다. 성령이 주시는 생명의 바람이 불어오면 죽은 자가 살아나고,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군사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 하나님을 느끼고 성령과 동행하는 신앙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성령에 대해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연속 설교를 통해서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배우고 성령 하나님을 깊이 느끼기 원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 계시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찬양합니다.-河

A-type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아침 묵상은

전쟁에 나가서도 무조건 폭력을 사용해서 적을 공격하지 말고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때에는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신명기 20:10)

 

 

전쟁은

양측의 분노가 극대화된 상황이어서 이겨야 살아남습니다.

그런데 우선 화평을 선언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평화(샬롬)”의 하나님이심을 알려줍니다.

 

저는 말씀을 읽고

<오늘 하루 한 번도 화내지 않기>라는 적용을 제시했습니다.

 

“오늘 하루”라는 말에서 안심이 되셨을 것입니다.

“화내지 않기”도 마음만 굳게 먹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한 번도”라는 말에는 부담을 느끼셨을 수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말씀을

우리 참빛 식구들께서 얼마나 실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2.

악하고 공정하지 못한 세상이나

그릇된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분출하는

의로운 분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상에서 화를 내는 것은

대부분 자기 절제와 관련 있습니다.

 

화를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A-Type>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A = Anger 입니다.

 

또한, 화를 내는 것은 우리 자아(ego)와 연관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세상 또는 상황이 돌아가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내가 우선이고, 내가 최고의 자리에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내가 대접을 받고, 내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도 화를 참기 어렵습니다.

– 이 모든 것이 ‘자아’가 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분노는 “내려놓지 못한 자아”

또는 “성숙하지 못한 자아”에서 비롯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리를 내려놓지 않고,

자신을 비우지 않고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면

33년을 사시면서 엄청 화를 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탁하듯이

“자기를 버리고” “섬기는 자”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자아(ego)는 영(zero)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의 부족함, 엉뚱함, 배신을 참아내실 수 있었고

호시탐탐 예수님을 시험하던 종교지도자들을 여유 있게 따돌리시고

십자가로 향하는 길목에서 받은 조롱, 멸시, 아픔과 죽음을 감내하셨습니다.

 

3.

팬데믹 상황이 계속되니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막연한 자택 격리가 쉽지 않고

온 가족이 작은 공간에서 온종일 삼시 세끼를 해결하며 지내기도 어렵습니다.

 

자칫 각자의 자아( ego) 가 한 번에 분출되면

집안이 전쟁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유없이 마음이 불편하고

자기에게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때일 수록 자신을 돌아보고

성령의 열매 “절제( self-control)”를 연습하며

하나님 사랑의 “A-type”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기 원합니다.

여기서 A = Agape 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Gal 5:22-23)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풍성히 열매 맺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5. 21 이-메일 목회 서신)

부활 그 이후 (5)

부활이 없으면

 

사순절 한가운데를 지나면서 예배로 모이지 못하는 동안 <십자가 십자가>라는 주제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묵상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상이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어진 길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십자가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 앞에 주어진 어려움도 능히 이기고 그 깊고 큰 은혜에 잠기길 원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화목을 이룬 십자가, 하나님께 버림받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새로운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세상의 형틀을 승리의 상징으로 만드신 십자가의 능력을 차례로 배웠습니다.

 

부활 주일을 보내고 교회력에 따라 부활 절기를 지내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예루살렘을 떠나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를 예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함께 걸으며 성경 말씀을 풀어 주실 때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니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현장에 없던 도마는 자신의 눈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의심이 많기보다 집요한 신앙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마를 찾아오셔서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도마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도마는 눈으로 확인하고 믿었지만, 부활의 주님을 보지 못하면서 믿는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축복하신 예수님 말씀도 기억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지만, 여전히 죄책감에 쌓여서 갈릴리 어부로 돌아온 베드로와 몇몇 제자를 예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세 번의 질문을 통해서 베드로를 회복시켜 주시고 그에게 양을 맡기셨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셨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확신과 장차 가야 할 인생 목표를 발견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을 그대로 지켰습니다. 막연한 기다림을 한마음과 간절한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앙 안에서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 끝에 희망이 있습니다. 십자가 너머에 부활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살아생전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출세와 성공이 보장된 기득권을 버리고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는데 그는 이 모든 것이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부활 신앙의 힘입니다. 우리도 부활의 길을 걷고 부활을 살기 원합니다. -河-

믿음으로 사는 것

좋은 아침입니다.

 

1.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 백신 개발이나 사회적 면역 소식은 막연합니다.

 

계속 망가지는 경제와 소상공인들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경제를 꽁꽁 묶어둘 수도 없으니

뚜렷한 해법 없이 딜레마에 빠진 듯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별것 아닌 바이러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주 까다로운 바이러스였습니다.

 

2.

자택 격리를 시작한 지

두 달 가까이 다가옵니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될 법도 한데

시간이 갈수록 예전의 일상이 그립습니다.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도,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도 어딘가 부족합니다.

 

참빛 식구들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친교실에서 시끌벅적 담소를 나누며 친교하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얼른 보고 싶습니다.

 

행여나

경제가 더 망가져서

우리에게도 큰 파도가 밀려온다면 어떻게 할 지에 대한

불안감도 느낍니다.

 

3.

지난 주일에는

부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기다림의 끝이 있음을 믿고

그 끝을 갖고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한마음으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기다림이 소극적인 대처라면

현재의 일에 충실하고

앞일을 예견하고 준비하는 것은 팬데믹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처입니다.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믿는 사람답게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성경에 수없이 등장하는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꼭 붙들고

현재의 상황을 대면하고, 필요한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어려운 일을

믿음으로 대처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각자의 자리에서 깊이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4.

예수 믿는 사람답게

생각하고, 마음먹고, 행동하기 원합니다.

 

어려운 시기 한 가운데 서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은 물론 세상에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힘들 때 임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합니다.

깊은 골짜기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한 주간, 말 그대로 믿음으로 삽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Fear not, for I am with you; be not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I will help you,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Isa 41:10)

 

 

하나님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실제로’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5. 14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