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의 복음서에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 표적을 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표적(sign)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적 자체보다도 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표적 이후에 그에 대한 설명이 등장합니다. 처음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마태, 마가,누가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합니다. 비슷한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공관복음서에도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자주 소개합니다. 요한복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지만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똑같이 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는 것은 예수님의 위치에 올라가려는 것이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복음서의 기적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자연을 다스리시고, 병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실 수 있는 분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의 표적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복음서에서 발견되는 기적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경우 신앙생활을 하면서 병 고침을 받거나 귀신이 쫓겨나는 기사와 이적을 경험하곤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이자 놀라운 체험입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경험하면 아무래도 신앙에 확신이 생기고 역동적인 신앙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기사와 이적에 매달리는 신앙은 건전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2절에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보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표적만을 구하고 집착하면 신앙이 왜곡됩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던 2천 년 전과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당시는 의술도 발달하지 않았고, 병에 걸리면 죄를 지은 결과라고 믿던 시대였습니다. 글을 읽거나 쓸 수 있는 인구가 매우 적어서 서기관들이 성경을 풀어주고 대신 글을 기록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대였기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요즘 시대는 꼭 기적이 아니어도 하나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의술을 통해서 병을 고치면서도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사와 이적을 통해서 또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온전해 지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명령하시니 죽음에서 일어났습니다.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죽음의 세력이 침투해 있다면 달리다굼하고 일어나면서 기적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