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때 묻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달 둘 째까지

대학원 공부를 위해서 데이비스로 올라가면서

우리 집은 말 그대로 빈 둥지(empty nest)가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쉬는 이번 주간,

조금 넓고 햇볕도 잘 들어오는

아이들 방으로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10년여 쓰던

책상을 먼저 해결해야했습니다.

 

처음 샌프란에 왔을 때

오피스 디포에서 구입해서 하루 종일 조립했던 책상인데

이제 수명을 다한 것입니다.

 

조립했던 때와 반대로

해체작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책상에 묻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상 바닥의 칠도 벗겨지고

아이들의 손때가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이 놈들이 이렇게 공부했구나”

마음이 짠- 했습니다.

 

그냥 넘기기가 아쉬워서

사진을 찍어 보관해 놓았습니다.

한가할 때 아이들에게 보내줘야겠습니다.

 

2.

어떤 물건에 손때가 묻었다는 것은

주인이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예전에는

평생 한 권의 성경책만 보신 어르신들이 많으셨습니다.

그분들의 성경책을 보면

‘너덜너덜’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손때가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성경번역본의 종류도 많고

셀폰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으니

손 때 묻은 성경책을 볼 기회가 점점 줄어들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어머니의 언더라인>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유품으로는 그것뿐이다.

붉은 언더라인이 그어진 우리 어머니의 성경책.

 

가난과 인내와 기도로 일생을 보내신 어머니는

파주의 잔디를 덮고 잠드셨다.

오늘은 가배절 흐르는 달빛에 산천이 젖었는데.

이 세상에 남기신 어머님의 유품은 그것뿐이다.

                 

가죽으로 장정된 모서리가 헐어 버린 말씀의 책,

어머니가 그으신 붉은 언더라인은 당신의 신앙을 위한 것이지만

오늘은 耳順(이순,60)의 아들을 깨우치고 당신을 통하여 至高(지고)하신 분을 뵙게 한다.

 

동양의 깊은 달밤에 더듬거리며 읽는 어머니의 붉은 언더라인

당신의 신앙이 지팡이가 되어 더듬거리며 따라 가는 길에

내 안에 울리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

-박목월-

 

성경책을 한권 지정해서

줄을 치고, 여백에 메모도 하고

손 때를 묻혀가면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119:105)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to my path. (Psalms 119:105)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을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주의 말씀으로 참빛 식구들의 가는 길을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9.8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