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예배에서 룻기를 읽고 있습니다.
룻기는 베들레헴에 가뭄이 들면서
가족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민간
엘리멜렉의 가족사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엘리멜렉과 그의 두 아들이 모압에서 죽고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만 살아남았습니다.
잘 살기 위해서 꿈을 갖고 떠난 이민길에
예상치 못한 재난이 닥친 것입니다.
나오미는 남편을 잃은 두 며느리와
10여년을 모압에서 이민자(나그네)로 살았습니다.
나오미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 지
당시 홀로된 여성의 삶과 중첩되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모압 출신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옵니다.
어머니의 민족이 자기 민족이 되고
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끝까지 함께 하기로 맹세하고 떠난 여정입니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역이민을 했지만,
모압 출신 룻은 베들레헴의 이민자가 되었습니다.
상황이 바뀐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온 룻은 언제나
“모압 출신” “모압 여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습니다.
선민의식이 컸던 이스라엘에서 룻이 겪었을 나그네 서러움이 느껴집니다.
3.
룻과 나오미만 이민자로 산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처음부터 나그네(이민자)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가나안 땅에 온 아브라함,
형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 동네로 피난 갔던 야곱,
형들에 의해서 이집트에 팔려간 요셉과 그의 후손들까지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나그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와 함께 특별히 나그네를
환대하고 대접하라고 부탁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셨습니다.
3년 공생애 동안 머리 둘 곳 없는 노숙자로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사셨습니다.
예루살렘의 기득권자들은
예수님을 핍박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대신, 당시에 나그네로 살았던 땅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찾아왔고
나그네로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훗날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도
나그네로 소아시아와 유럽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4.
요즘처럼 미국에서 나그네로 사는 심정이
복잡한 때도 별로 없었습니다.
인종 차별은 미국의 고질적 문제라고 생각했고
1992년 LA 폭동과 소소하게 일어나는 유사한 갈등으로 경각심을 가졌지만
팬데믹 이후 아시안 혐오가 미국의 큰 사회문제가 되고 보니
우리의 이민 생활이 나그네 삶인 것을 실감합니다.
스스로 조심해야겠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도 내야 합니다.
타인을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 오길 기도해야 합니다.
룻기의 보아스가
모압 여인 룻을 배려하고 돕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세상에 나그네로 왔다가
본향인 하나님께로 가는 이민자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출23:9)
하나님,
참빛 식구들이 걸어가는 나그네 길에
주께서 꼭 동행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4.1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