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느덧 10월도 저물어갑니다.
길가에 낙엽이 뒹굴고
엊그제 단비까지 내리면서
나뭇가지가 앙상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싹이 돋는 봄을 좋아하고
낙엽이 지는 가을은 솔직히 별로입니다.
그렇지만 자연의 순리를 어길 수 없어서
어느덧 60 번에 가까운 가을을 맞고 있습니다.

 

싹이 트고, 파란 잎과 열매를 맺고
거기에 멈추면 좋은데
마지막으로 화려한 단풍과 함께
하나하나 잎이 떨어질 때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소설도 생각나고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그래도 우리 교회가 있는 샌프란 도심은
사시사철 서늘하고 계절의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하기에
우리 권사님들이 연세에 비해서 젊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2.
하여튼
가을이 찾아오면 한 해를 돌아봅니다.

 

기쁘고 감사한 일들은 나뭇가지에 달려있습니다.
바닥에는 힘들고 외롭고 막막한 일들이 낙엽처럼 뒹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우리 역시 연약하고 부족해서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기쁨과 감사보다
길가에 뒹구는 어려운 일들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밟힙니다.

 

참빛 식구들께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열심히 사셨습니다:

감사하고 기쁜 일들이 많이 생긴 식구들
힘들지만 참으면서 한 해를 믿음으로 사신 식구들
예상치 않은 일들로 인해서 마음고생을 하신 식구들
선하게 살았는데 힘든 일이 닥치니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신 식구들
혼란하고 악한 세상을 보면서 하박국처럼 탄식하고 질문하시는 참빛 식구들.

 

목사로서는
어려운 한 해를 사신 참빛 식구들께 마음이 더 쓰입니다.
목회의 자리에서 기도하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3.
무엇보다
어려운 중에도 피난처 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믿음이 남아있고
그 믿음이 우리를 견인하는 것에 역시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 “주님”
무심코 또는 간절히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신 것도 감사합니다.

 

주일에 하박국을 함께 살펴보면서
“탄식(lament)”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탄식은 금기 사항이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모범 답안처럼 여겼는데
하박국과 아침에 읽는 욥기를 통해서 “탄식”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앙의 요소/덕목임을 배웠습니다.

 

10월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 앞에 솔직히 서기 원합니다.
우리 힘으로 다스리기 어려웠던 것들
저절로 눈물이 나오고 원망과 탄식이 나왔던 순간들
하나님 앞에 남김없이 내어 드리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표시가 아니라
그만큼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고 의지한다는 표시입니다.

 

마음껏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흘려보내고
홀가분하게 올해 남은 두 달을 맞이합시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 62:8)

 

하나님,
주님 앞에 나와서 마음을 쏟는
참빛 식구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0. 28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