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합시다 (4)

– 인자하심을 따라

 

예레미야 애가서를 읽으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대하시는 것이 너무 심하게 느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충분히 경고하셨고, 이스라엘의 죄악도 용서받기 힘들었지만,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멍에를 메우셨다고 말하니,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선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도 하나님을 기업삼고 아침마다 새롭게 찾아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애가서 말씀이 대단하게 다가옵니다.

 

애가서 속의 하나님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구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서로 대표되는 구약의 정통 신학은 인과응보입니다. 그에 반기를 드는 욥기같은 말씀도 있지만, 대부분 구약성경은 죄와 벌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애가서 역시 이 같은 구약의 큰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가서 처음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그리고 오늘 본문(33절)에도 알려 주듯이 백성들에게 벌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본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잠시 벌을 주어서 힘들게 하시지만, 결국에는 구원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도를 지나칠 정도로 악해서 보통 벌을 갖고는 뉘우칠 가능성이 없으니 하나님께서도 궁여지책으로 큰 재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역시 “인자와 긍휼”이라는 하나님의 마음에 따른 것입니다. 겉으로는 자기 백성을 심판하지만, 하나님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변치 않는 인자(헤세드)와 어머니 같은 긍휼(레헴)이 자리잡습니다. 그러니 재난으로 인해서 고난 받는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결국에는 구해 내실 것입니다.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이 여기실 것임이라”(32절)는 말씀이 당시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소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생하게 하시고 근심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절대 아닙니다. 또한 여기서 “근심”은 힘든 일이 겹치면서 찾아오는 슬픔입니다. 애가서의 슬픔은 죽은 자를 애도할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이 우리가 마음에 품어야 할 신앙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입술을 땅에 대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혹시라도 소망을 주실 것을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