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에서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악의 평범함 banality of evil>이라는 용어를 소개했습니다.
아이히만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조직적으로 주동한 인물입니다.
체포된 후에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한나 아렌트는 그 과정을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성실한 정부 관리였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유대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환경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유대인 학살을
양심의 가책도 없이 실행했습니다.
죄 속에 들어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요 행동인데
한나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함>이라고 불렀습니다.
2.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이라는 용어는
큰 울림을 주는 무서운 표현입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도
죄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환경에 있으면
양심의 가책 없이 악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일 설교에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찬송가를 지은
존 뉴턴이 살던 영국 사회가 노예무역을
일반적이고 평범한 것으로 여긴 것이
<악의 평범함>의 한 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기독교인들도 노예무역과 노예를 두고 사는 것에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행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지은 존 뉴턴도
노예 무역상의 선장으로 악의 평범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면서
노예무역의 부당함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정치인을 발굴하고 격려하면서
영국의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악의 평범함에서 벗어났고 악의 고리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3.
존 뉴턴이나 윌버포스 같은 선각자들에 의해서
세상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도 어디선가, 어떤 영역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범하는 죄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악의 평범함>
–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두고두고 곱씹을 용어입니다.
우리도 잘못된 일을 무심코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관행으로 받아들이는 일이기에
죄책감이나 문제의식 없이 행할 수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편견, 배척,
관행처럼/습관처럼 내려오는 그릇된 일들,
“다른 사람도 하는데 뭐”라고 생각하면서 범하기 쉬운 오류들
– 평범함 속에 도사리고 있는 그릇된 일들을 찾아내고 시정해서
밝고 맑은 세상을 세워 나가기 원합니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시 140:12)
하나님,
우리 안에 무심코 행하는 악한 일들이 있으면
깨우쳐 주시고 고칠 용기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7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