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교회는
샌프란에서 비교적 안전하고 한적한 곳에 있는데
팬데믹 전에는 가끔 보았던 노숙자들이
팬데믹을 거치면서 종종 찾아옵니다.

 

우리 동네까지 오는 것을 보면 살기가 어렵고
노숙자의 숫자가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샌프란에는 약 8천명 정도의 노숙자가 지내는 것으로 알려짐)

 

노숙자들이 오면 대개 흔적을 남깁니다.

 

최근에는 정원에 있는 교회 수돗가에서
샴푸나 비누를 사용하니
권사님께서 정성껏 가꾸시는 정원이 망가질까 염려됩니다.

 

이분들이 교회 근처에서 잠을 자고 가면
옷가지며, 음식물 쓰레기 등을 여기저기 남겨 놓고 갑니다.
물론 좋지 않은 냄새가 남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노숙자 사역을 하는 단체나 교회들을 자못 존경하게 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노숙자들을 돕지는 못해도
교회 앞이나 정원에서 밤을 지내는 것은 막지 않습니다.
수돗물도 정원에 피해만 가지 않으면 사용하게 할 생각입니다.

 

2.
한번은
노숙자 한 분이 와서
교회 옆 정원에 자리를 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슬리핑백을 펼치고 수돗가를 오가면서 한참을 준비합니다.
그러더니 슬리핑백에 들어가서 잠을 잡니다.

 

아침에 다시 카메라를 켜니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아직 취침 중이십니다.
10시쯤 일어나서 침구며 옷가지를 모두 정리해서
백팩에 넣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나중에 교회에 가보니
자신이 머물다 간 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나셨습니다.
이 정도만 정리해주면
얼마든지 장소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우리도 어느 곳에 머물거나
어떤 일을 하면 흔적을 남깁니다.
인간관계, 길게는 우리 인생길에도 흔적이 남게 마련입니다.

 

좋지 않은 흔적은
깔끔하게 정리하고 지워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기억, 추억, 또는 결실과 같은 좋은 흔적은
아름답게 남겨놓아야 합니다.

 

노숙자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보면서
잠시 멈춰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내가 남기는 흔적은 어떤 것일까?
어수선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길이 남을 좋은 흔적은 무엇이 있을까?”

 

오늘 하루,
우리가 걷는 발걸음, 나눈 대화, 마음, 하는 일 등등에서
좋은 흔적, 좋은 기억, 그리스도의 향기가 남겨지길 기대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향기]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2:14)
하나님,
우리가 지나간 인생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남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8. 4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