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에서 시편 23편을 설명하면서
양의 시력이 -10에 가까워서 1미터(3ft) 정도 앞만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진으로 재난 가운데 있는 터키(튀르키예)에서
목자들이 한눈을 판 사이에 양 한 마리가 절벽으로 뛰어내리자
500여마리의 양들이 따라서 절벽으로 뛰어내렸다는 예전 외신 보도도 생각났습니다.
앞에 가는 양들의 궁둥이만 보고 가니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양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목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양뿐만 아니라
우리도 한 치 앞을 알지 못합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해서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다지만,
예측불허의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앞서가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신앙의 길을 갑니다.
믿음이 주는 유익이고 힘입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재를 믿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요,
믿음은 우리 속에서 생기는 ‘느낌’일 뿐이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나님의 실재와 믿음을 인정하지 않는 분들께
만족할 만한 답을 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실재를 증명해 내는 통로가 되길 바랄 뿐이지요.
하나님을 눈으로 본 사람이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도 요한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요일 4:12)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예수님 말씀도 기억합니다(마5:16).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2.
“어떻게 살 것인가?”
– 우리 모두의 고민입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도 우리 몫이니
더욱 고민이 깊어집니다.
억지로 할 것이 아닙니다.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질 것도 아닙니다.
자칫 신앙이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이 지고 가던 어깨 위의 짐이 되거나
겉으로만 빛과 소금인 척하는 위선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계속 생각하고
예수님의 흔적이 우리 안에서 드러나길 기도하고 노력할 뿐입니다.
3.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몸)를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비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필요 없는 것, 예수님을 따라 사는데
거추장스러운 것을 비우고 덜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운 곳을 예수님 마음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고 자라가는 존재(being)의 채움이 꼭 필요합니다.
“예수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순간순간 많이 생각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매사에 던져야겠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길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세상에 펼쳐 보이기 원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참빛 식구들의 발걸음을 응원합니다.ㅇ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 4:12)
하나님,
우리 생각과 몸짓 어느 한 곳에라도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2. 9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