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친근한 용어가 들립니다.
“우리 비행기는…”
이라고 시작하는 멘트인데
주기도문 첫 번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우리가 생각났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마음을 안심시켜줍니다.
함께 간다는 뜻입니다.
누구도 배제하거나 따돌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한국행 비행기 안에는
여러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옆 사람과 인사를 나눌 정도인데
그것도 혼자 여행할 때나 그렇지
대개는 함께 가는 가족이나 일행과만 소통합니다.
그런데도
비행기 승무원은 “우리 비행기”라고 했습니다.
목적지가 같으니 우리입니다.
비행기라는 큰 캡슐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니 우리입니다.
2.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 (our Father)”라고 부르셨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말 그대로 우리를 실천했습니다.
세상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믿었으니 그리스도인들끼리
똘똘 뭉쳐서 우리 공동체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재산까지 공유했고
어려운 교우들을 돕고
예수님 안에서 남녀노소는 물론 신분까지 초월하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이 그때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유무상통하는 공동체라기보다
한계를 가진 우리 공동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3.
우리 교회는 다양함을 존중합니다.
다양함 속에서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우리라는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지요.
유니폼을 입듯이 한 가지 색깔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들, 정말 중요한 것에서
“우리”를 찾고 그것을 기초로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닮으려는
목적이 같습니다.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처럼
하나님 나라라는 목적지도 같습니다.
주일마다 같은 공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니
“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 공동체는 서로를 많이 알고 친밀합니다.
그래도 부족한 것이 있기에 혹시라도
외롭거나 배제되는 참빛 식구들이 없도록 서로 챙겨야 합니다.
“우리”라는 말을 쓰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늘위에서
참빛 식구들을 눈에 그리며 기도하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실감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넘어서 ‘우리’ 하나님이 되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시편 147:5)
하나님,
같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
참빛 식구들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4. 13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