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바울 서신의 서두에 “은혜와 평강”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도 예외가 아닙니다:“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1절). 데살로니가전서와 비슷한 시기에 기록된 갈라디아서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1:3)고 했습니다.
은혜와 평강은 바울이나 기독교인들만 사용하던 용어가 아니라 당시 편지를 쓸 때 자주 사용하는 관용표현이었습니다. 대신, 로마나 그리스의 신들이 은혜를 베풀어준다고 생각했고, 평강은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 황제가 주는 평화였습니다. 로마라는 세상 제국이 주는 은혜와 평강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바울은 은혜와 평강의 근원을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았습니다. 세상이 주는 은혜와 평강과 구분한 것입니다.
은혜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족함이 없고 영원한 선물입니다. 자격이나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말 그대로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킨다고 했습니다. 은혜에 깃든 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은혜에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가운데 으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은혜(카리스)가 헬라어 개념에 가깝다면, 오늘 배울 평강(에이레네)은 샬롬이라는 히브리어와 연결되는 구약의 개념입니다. 히브리어 샬롬은 범위가 무척 넓습니다. 개인적인 평안, 형통,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모두 포괄합니다. 동시에 가족은 물론 국가 공동체에 임하는 평화를 가리킵니다. 갈등이나 다툼없이 하나 된 상태입니다. 이처럼 히브리어 샬롬은 모든 상황 개인의 마음과 몸까지 완벽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모습이 곧 샬롬입니다.
바울이 평안으로 인사할 때는 “관계의 회복”이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담을 쌓고 살 때 마음의 갈등과 미움이 가득 찼습니다.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했을 때, 우리 존재 깊은 곳에 자리 잡았던 문제들이 해결되고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로마 시대 당시의 평화는 제국의 힘을 키워서 전쟁에서 이기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힘을 통한 평화였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평강은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 행복함,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삶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입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14:27)이라고 하셨듯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평안입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