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의 열매

좋은 아침입니다.

 

1.

제 책꽂이에는

<입술의 열매: 약이 되는 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두 번째 책은 “독이 되는 말”이었을 텐데 저에게는 없습니다.

약이 되는 말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서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약이 되는 말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당신과 악수하면 힘이 생깁니다” “이 정도면 넉넉합니다”

“참 아름답지요” “생각 날 거예요” “참 좋은 생각이예요”.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듯이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 용기를 주고, 우리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독이 되는 말도 몇 가지가 생각납니다:

“할 수 없어” “절대 안 될거야” “귀찮아”

“기도해도 소용없을걸” “그만두자”

“너 때문이야”.

 

말에 힘이 있어서,

말로 자신은 물론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지만,

말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서 자신의 영혼을 찌르고

상대방의 마음에 깊이 상처를 남깁니다.

 

2.

그러고보니

하나님께서도 말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니 말씀과 우리 신앙도 밀접합니다.

 

혼란이 사라지고 질서가 잡히는,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찾아오고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고

비난이 아닌 격려를

불평이 아닌 감사와 찬양을,

우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의 존재, 나의 나됨(성품)을

보여주는 통로일 수도 있습니다.

 

3.

요즘 세상의 말이 너무 거칩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말은

“보복(retaliation)”이라는 단어입니다.

 

국가간에 조금만 손해를 받아도, 공격을 받아도

서로 보복하겠다고 기를 세웁니다.

국가간의 거래에 세금을 책정하는 정책에도

“보복 관세”라는 말을 씁니다.

 

꽤 무서운 말입니다.

예수님은 보복하기 보다 용서하고

서로 회복하고 화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복을 원하셨다면,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예루살렘 사람들을 단칼에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보복적 정의(retributive justice)가 아닌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4.

하나님이 곁에 계셔도

부끄럽지 않을 언어를 사용합시다.

독이 되는 말은 줄이고

약이 되는 말을 통해서 세상을 밝혀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러셨듯이

자신은 물론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갖다주는 말을 사용합시다.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세상을 밝히는 입술의 열매가 우리에게 가득하길 바랍니다.

 

온순한 혀는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5:4)

 

하나님,

살리는 말, 약이 되는 말로

입술의 열매를 맺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6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