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장 (3)

고치신 이는 예수라.

 

병자들이 모여 있는 베데스다 연못에 가신 예수님께서는 38년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있는 병자를 찾아가서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병이 매우 오래된 것을 감지하셨고, 불쌍한 마음에 그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한 것입니다. 아무 조건이 없었습니다. 전적인 은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사건이 특별히 많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이 당시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병을 고치셨을 것입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38년 된 병자는 곧바로 병이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시비를 겁니다. 안식일 날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 규정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쉬신 것에서 시작된 안식일입니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은 십계명에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이 네 번 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날입니다. 안식하면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유대교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규정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병이 나은 사람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조차 금지할 정도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안식일 규정이 사람들을 판단하는 데 사용되곤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곡식 이삭을 따먹은 것을 갖고도 시비를 걸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당시에 안식일 법은 매우 복잡해서,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에게 큰 족쇄가 되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 법을 갖고 백성들을 정죄하였습니다. 종교 권력의 남용이었습니다.

 

병에서 나은 사람은 자기를 고쳐준 사람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해서 걷고 있다고 답변합니다. 맞습니다. 이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이 중요했습니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걷는 것이나, 그날이 안식일이라는 사실은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기뻤을 뿐입니다. 게다가 고침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만 고쳐 주시고 자리를 뜨셨기 때문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사람들이 헛된 희망을 갖고 천사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안식일에 병에서 해방된 사람을 정죄한 유대인들은 과거의 율법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38년 된 병에서 고침 받은 사람만이 예수님을 만났고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