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지난주에는 십자가의 의미 가운데 “속죄(atonement)”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값을 구약에서 제물로 바쳐진 어린양처럼 예수님께서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대속(redemption) 또는 속전(ransom)이라고 부릅니다.
죄를 지은 우리가 전적으로 의로우신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마리아에게서 나셨지만, 성령으로 잉태하심으로 죄 없이 그러나 완벽한 사람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신 모범이라고 여기는 교리도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관한 교리들이 완벽하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셨다는 속죄의 교리는 법정의 용어가 강조된 느낌이 큽니다. 우리가 치를 값을 대신 치르셨다는 것은 지금도 법정에서 통용되는 보석금 제도를 떠올립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이 개인적인 신앙에 머무는 경향도 있습니다.
1930년 스웨덴의 신학자 구스타프 아울렌(Gustaf Aulen,1933-1952)은 그의 책 <승리자 그리스도 Christus Victor, 1930)에서 초대 교회에서 주장했던 고전적 속죄론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목적을 넘어서, 이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을 물리친 승리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모든 악한 세력에 대한 승리였기에 우주적 승리라고 보았습니다.
아울렌이 정리한 승리자 그리스도는 초대 교회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핍박과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반대와 저항도 거셌습니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넘어서 이방 세계로 나가면 다양한 종교와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이었습니다. 모든 악한 세력을 물리치는 능력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보낸 편지에서 예수님을 믿기 전의 상태를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고 했습니다.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셨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죄와 허물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죄 가운데 있던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무너뜨리는 법조문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핍박하고 박해하는 모든 세력을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기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승리입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