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에는
십자가에 대한 연속 설교를 마친 후,
잠시 숨을 고르며 찬송가를 해설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에 깃든 이야기였습니다.
설교 말미에, 제가 좋아하는 예화를 소개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메고 산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황금 십자가, 꽃으로 장식된 십자가 등
여러 십자가가 놓여 있었습니다.
원하면 십자가를 바꿔서 지고 갈 수 있다는 예수님 말씀에
처음엔 황금 십자가를 들어보았지만, 너무 무거웠고,
다음엔 장미꽃으로 된 십자가를 선택했지만,
조금 가다 보니 가시에 찔려 포기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기가 메고 온
십자가를 다시 지고 산을 내려가면서
그렇게 감사하고 기뻐했다는 예화였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 예화가 좋습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그리고 앞으로 주어질 인생길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최고의 선물임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2.
물론, 이 예화가 오늘날에도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현실에 안주하라는 메시지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거운 건 가볍게, 불편한 건 편하게 바꿔서
최고로 만드는 시대를 살아고 있습니다.
문제를 감내하기보다는 해결할 때 경쟁력을 갖춥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십자가 예화는 수동적이고
현실 순응적인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네요.
예전에 인터넷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속담을
해학적으로 바꾼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라”는 “아는 길은 그냥 곧장 가라”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는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시작이 반이다”는 “시작은 시작일 뿐, 이미 늦었다” 등입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한 해석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시대에 맞는
지혜와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것을 배우고 장착하면서,
변화에 대처하고 더 나은 길을 찾아내야 합니다.
3.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화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예화에서 주목한 것은
여러 가지 십자가를 보고 ‘마음’이 흔들린 지점입니다.
결국에는 처음에 메고 온 십자가에 마음을 확정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산을 내려갑니다.
우리는 종종
남과 비교하며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왜 이런 십자가를 지고 있을까?’
‘왜 내 인생은 이리 무거울까?’
처음 마음을 꼭 간직하면서
세상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남과 비교하다가, 마음이 흔들리면 지는 겁니다.
외적인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우리 각자가 지고 가는 십자가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장 23절)
하나님,
십자가 꼭 붙들고
흔들림없이 주어진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7. 10.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