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테

좋은 아침입니다.

 

1.

“덕후”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어떤 분야에

깊은 열정을 쏟는 사람을 일컬을 때

종종 이 단어를 사용한답니다.

 

원래는 19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을 지칭하는 ‘오타쿠’에서 유래했지만,

이제는 단순히 ‘광적인 팬’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한 가지 대상에 진심을 다하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예수님의 덕후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십자가에 관한 연속 설교를 마쳤으니,

십자가 덕후들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2.

헬라어 “아레테”는

‘탁월함’ ‘최고의 상태’ 등을 뜻합니다.

개역 성경은 이 단어를 “덕(德)”으로 번역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기 재능이나 실력을 최고로 발휘한 상태입니다.

운동선수들이 갈고닦은 실력을 최고로 발휘해서

신기록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도덕적으로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네 가지 덕(정의, 지혜, 용기, 절제)을

추구하고, 갖춘 모습입니다.

 

이처럼 헬라어 “아레테”는

최고, 극치, 최선, 정상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3.

저는 예수님의 아레테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철학의 아레테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아레테는

더 낮은 곳, 더 아픈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최고의 아레테, 영원한 아레테를 이루셨습니다.

 

4.

우리의 아레테는 무엇일까요?

 

우리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남과 비교는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착해 주신 재능과 은사를

최고로 발휘하며 살아갑니다.

 

그리스 철학이 강조했던

“정의, 지혜, 용기, 절제”를 추구합니다.

동양에서 강조하는 “덕”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아레테, 탁월함을 추구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갑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친절), 충성 온유와 절제(갈 5:2-23)를

우리의 삶과 성품 속에서 맺어갑니다.

기독교인의 아레테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탁월함의 자리, 예수님을 닮은 삶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진짜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아레테]누리게 주신 분이십니다. (벧후 1:3, 새번역)

 

 

하나님,

하나님 주시는 능력으로

아주 근사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7. 17.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