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주일 예배에서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에고 에이미 I am>를
하나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자기 소개문입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시작하신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는 양의 문이라”
지난 주일에 “나는 선한 목자라”까지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남은 세 가지 예수님의 <에고 에이미>를 미리 말씀드리면
“나는 부활과 생명이라” “나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
“나는 포도나무라”입니다.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의도(목적)를
파악하고 배울 기회입니다.
동시에, 우리도 “내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의 <에고 에이미 I am>를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을 닮고, 예수님의 삶을 닮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고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2.
요즘 세상이 파편처럼 갈라지고 있습니다.
‘파편’은 전쟁 용어입니다.
특히,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표피가 파편이 되어서
매우 위험한 살상무기가 됩니다.
그러니 “세상이 파편처럼 갈라져 있다”는 소름 끼치는 표현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서로 ‘다른 것’이 정상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모습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배경과 환경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것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서로 소통하고, 경청하고, 때로는 도전하면서
배워가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다름’이 ‘적’이 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파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SNS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에서는
사적인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합니다.
공공의 선(common good)을 추구하면서
생각이나 행동을 모아가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들,
생각이나 상황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사람들,
교묘하게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사람들,
거기에 우리가 믿는 신앙이 개입하면 더 복잡해집니다.
3.
저는 요즘 세상을 보면서
예수님의 세번 째 <에고 에이미>,
“나는 양의 문이라”가 자꾸 생각납니다.
문을 만들지 않고
각자의 벽을 쌓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대문 정도는 아니어도, 작은 창문이라도 만들면
서로에게 숨통이 트일 것 같은데 안타깝습니다.
양의 문인 예수님을 통해서 들어가고 나간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공감대를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요!
예수님을 닮은 우리가
세상에서 서로를 연결해 주는 “문”이 되길 바랍니다.
위험천만 파편처럼 갈라진 세상이
하나로 이어지는 “의와 기쁨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에베소서 2:14)
For he himself is our peace, who has made us both one
and has broken down in his flesh the dividing wall of hostility (Eph 2:14)
하나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9. 18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