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에 공부했던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게 될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요17:20).
이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이었습니다.
3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해서 뛰쳐나갔습니다.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했던 베드로조차
곧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마음도 비통해서
잠시 후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면
“이 잔을 내게서 치워달라”고 기도하실 겁니다.
물론, 아버지 뜻이 이뤄지길 기도하시고
말씀대로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이러한 순간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모습은 눈에 그리셨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해 들을
후대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예수님은
미래를 내다보시고 꿈을 꾸시는 비전가(visionary)셨습니다.
2.
‘꿈을 꾸는 사람’을 생각하면
창세기의 요셉이 떠오릅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보고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이 꾼 꿈을 가리켰지만,
성경을 읽는 우리는 믿음의 사람 ‘비전가’ 요셉을 떠올립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꿈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형제들의 잘못과 그들을 향한 미움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이집트에서의 성공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앞으로 나갔던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3.
꿈을 쫓는 사람은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과거에 미련을 갖고
자책하거나 후회하는 것을 자제합니다.
아쉬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합니다.
누군가를 탓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절대 가룟 유다 탓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셉도 형제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형제들을 통해서 이집트에 팔려 온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꿈꾸는 사람은 원망 대신 감사를,
절망 대신 소망을 붙듭니다.
우리도 그 길을 걷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슴에 품고
희망을 노래하며 하루를 시작합시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15:13)
하나님,
희망을 노래하고
꿈을 쫓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0. 16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