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올해 표어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두 주간에는 “하나님 사랑”에 초점을 맞춰서 공부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랑”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 하나님 백성들의 사랑을 가리키는 특별한 헬라어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사랑과 분명히 구별됩니다. 히브리어 아하브는 언약/약속이 강조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마음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약속을 지키면서 끝까지 이어지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이 아하브라면, 하나님 사랑이 임한 상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헤세드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헬라어 아가페는 히브리어 아하브와 헤세드가 통합된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사랑만 있다면, 외톨이가 됩니다. 반쪽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둘째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서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이 먼저 가면, 그 뒤에 이웃 사랑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이 완성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짝입니다. 자칫, 신앙이 좋고 깊어질수록 하나님 사랑에 집중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의 완성은 이웃 사랑에 있습니다. 동시에 이웃 사랑의 목표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합(合)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서로 순환하면서 사랑을 완성해 갑니다.
무엇보다 이웃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말씀 앞에서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도 사랑하느니라”(요일4:21). -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