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나이가 들다 보니 옛날 일들이 문득문득 떠올라,
설교 시간에 제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중학교 때 아주 무서운 미술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외모는 물론 말투까지 무서웠습니다.
잘못 보이면 체벌도 가하셨습니다.
미술 시간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겁을 먹고 잔뜩 긴장했습니다.
숨을 죽인 채 선생님 말씀을 듣고,
시키시는 대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동양화 국전에
응모하실 정도의 실력자셨습니다.
하루는 수묵화 난초를 그리게 하셨습니다.
대충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난초 하나하나 순서대로 그려야 했습니다.
숨을 죽이고 난초 몇 가닥을 그리고 났더니,
선생님께서 갑자기 크게 웃으시면서,
난초 그림에는 “여백”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어리둥절했고,
화를 내시지 않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습니다.
2.
무서우셨던 미술 선생님이 생각나서
사군자 난초 그림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지금 보니 시골 아이들에게
사군자 기초를 정확히 연습시키셨습니다.
난초 줄기가 5개 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큰 화선지가 모두 여백입니다.
저희는 난초를 그리는 데 온 정신을 쏟았지만,
선생님은 우리가 그린 그림 속에서
여백을 먼저 보셨던 것입니다.
미술 선생님처럼 우리 조상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종이를 가득 채우기보다 ‘여백’을 남겨 놓았습니다.
수양버들처럼 멋있게 그린 난초도 중요하지만,
난초보다 훨씬 넓은 여백을 보고 즐긴 것입니다.
3.
어느덧 1월이 모두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 한 해도 새해 첫 달이 지나간 것처럼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 삶은 더 빠르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앞에서 누가 당기는 것 같고
뒤에서는 누군가 밀고 있는 느낌으로
쫓기듯이 살아갑니다.
많은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쉬면 안 될 것 같은 압박 속에서의 쉴 틈 없는 삶입니다.
‘여백’을 말하는 것이 사치인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새해 첫 달을 마무리하면서
‘여백’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립니다.
난초 다섯 줄기가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다섯 개여서 더 넓어진 여백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2026년의 한 달이 지나갔을 뿐입니다.
남겨진 여백을 이용해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 삶 속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여백도 남겨 놓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삶은 물론 신앙의 여백을 즐깁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 11:28)
하나님,
여백이 있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1. 29 이-메일 목회 서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