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 (3)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열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특히, 독립 선언서를 준비한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개신교 인사가 다수였습니다. 이분들의 희생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으며, 우리도 미국에서 자부심을 품고 살아갑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된 독립운동가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간직해야겠습니다.
성경에 처음 나오는 예배자들인 가인과 아벨에 대한 말씀을 나누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아 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마음과 태도가 언제나 완벽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릇된 모습이 발견되면 다음에 고치면 됩니다. 가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안색이 변할 정도로 화를 냈습니다.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 하나님을 향한 섭섭함이 분노로 발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찾아오셔서, 죄가 문 앞에 웅크리고 있으니, 죄를 다스리라고 당부하십니다. 이와 관련해서 존 스타인벡의 소설 <에덴의 동쪽>에 나오는 “팀셸”이라는 히브리어 동사의 의미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부탁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동생 아벨을 데리고 들로 나갑니다. 그리고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가인이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불리게 된 슬픈 사건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죄로 발전했고, 동생을 죽이는 어이없는 엄청난 잘못을 범했습니다.
아벨의 죽음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내게 호소하느니라”(11절)는 말씀이 안타깝게 들릴 뿐입니다. 아벨(히브리어 ‘하벨’)은 전도서에 나오는 “허무함”에서 왔는데, 그의 이름처럼 한숨 같은 허무한 인생을 살다 갔습니다. 신약 성경의 세례 요한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죽으신 예수님도 생각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헛되지 않았듯이, 히브리서 말씀대로 아벨의 믿음은 대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찾아오셔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가인은 태연하게 자신은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는 가인의 말은 뻔뻔하게 들립니다. 죄를 범한 이후에 가인의 말과 태도는 그의 마음이 죄로 인해서 완악해졌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은 배회하는 자가 될 것이고, 그가 농사를 짓는 땅에서 저주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계가 끊어지는 벌입니다.
가인은 회개는커녕 하나님의 벌이 너무 가혹하다고 투덜댑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이마에 표시하셔서 사람들이 가인을 해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우리 같은 범인은 가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