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다섯 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가나안 땅에 도착한 세겜에서, 벧엘에 정착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가뭄을 피하려고 이집트에 내려갔던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회개와 새로운 삶을 위한 결단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네 번째는 조카 롯과 결별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걸어보고 헤브론에 정착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창세기 15장에도 아브라함이 제물을 준비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주도하신 예배였기에 이번 성경 속 예배자에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아브라함의 예배는 매우 독특합니다. 아브라함 믿음의 절정에서 드린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하나뿐인 아들,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고, 아브라함은 멋지게 통과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처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고향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라고 하신 것과 비슷합니다. 자세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시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12:2)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 가나안 땅으로 내려올 때도 하나님 약속만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번에도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곧바로 아들 이삭을 바치기 위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순종, 절대적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공포와 전율, fear and trembling, 1984>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을 자세히 다룹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바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윤리적인 기준을 정지시키고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리아 산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두렵고 떨렸을 것입니다.
케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전사>라고 부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역설입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다시 주실 것도 믿었다고 키에르케고르는 보았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다시 얻었습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제물을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