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떨림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 뿐인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인신제사를 금지하는 성경 전체의 흐름,

오늘날의 상식과 윤리로 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명령입니다.

 

그런데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두말없이 길을 떠났습니다.

아들을 결박하여 제단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죽이려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멈추시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제물로 드릴 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여기서 “여호와 이레(예비하시는 하나님)”가 나왔습니다.

 

2.

키에르케고르는 <공포와 전율, Fear and Trembling>에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기사(knight of faith)”로 부르면서,

그의 믿음은 보편적인 윤리와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상식이나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개별자”의 결단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교훈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매우 고유한 사명입니다.

이를 보편화하여 모든 신앙인에게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도

쉽게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건을 근거로 하나님을 시험하시는 분으로 규정하면,

신앙이 “두려움과 떨림”에 매일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잘못 형성될 가능성도 큽니다.

 

이처럼 키에르케고르는 이 사건을

하나님의 일반적인 방식으로 확대하기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특별한 믿음의 사건으로

신중하게 이해할 것을 제안합니다.

 

3.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까요?

 

첫째, 이 말씀을 서둘러 결론 내리지 말고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야 합니다.

모리아 산을 향하는 두렵고 떨렸을 여정,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이삭을 묶고(아케다, 결박)

칼을 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성경 본문 속으로 빨려 들어가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두렵고 떨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아브라함 믿음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시험을 일반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시는 분이 아닙니다.

설령, 우리에게 시험과 시련을 주셔도

아브라함에서 보듯이 분명한 목적을 이루십니다.

 

셋째, 믿음의 힘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상식과 한계를 넘어서는 자유를 경험하게 합니다.

신비의 세계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던

“믿음의 도약(leap of faith)”을 이루기 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한 걸음 더 뛰어오르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하나님,

온전한 믿음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3 26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