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도 헨리 나우웬의 책 <긍휼>에서 예수님의 긍휼을 설명한 부분을 발췌해서 소개합니다. 나우웬은 책 결론부에서 긍휼의 삶을 감사와 연결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때, 예수님의 긍휼을 따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속에 있는 악과 맞대결하는 것이든 선을 지지하는 것이든 간에, 훈련된 행동의 특징은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분노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심지어는 우리 안에 많은 창조적인 에너지를 분출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1960년대 분노에 근거해서 열심히 활동했던 사회 활동가들은 곧 탈진하고 말았다. 종종 그들은 신체적 탈진과 정신적 탈진 상태에 이르는 바람에 심리 치료나 ‘새로운 영성’이 필요할 지경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성공이 없는 상황을 꾸준히 견뎌내기 위해서는 감사의 정신이 필요하다.
분노에 찬 행동은 상처받은 경험에서 비롯되는 반면, 감사에 찬 행동은 치유받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분노에 찬 행동은 취하고 싶어하나, 감사에 찬 행동은 나눠 주고 싶어 한다. 감사야말로 그 행동이 인내의 한 부분으로서 취해진 행동이라는 표시다. 그것은 은혜에 대한 반응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정복하거나 파괴하도록 하지 않고, 오히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선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므로 긍휼 어린 삶이란 감사하는 삶이며,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은 강제적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음침하지 않고 즐거우며, 광신적이지 않고 자유케 해주는 것이다. 감사가 행동의 근거가 될 때, 우리가 주는 것은 받는 것이 되며, 우리가 사역하는 대상은 우리에게 사역자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가운데 우리를 돌보는 존재를 감지하고, 우리의 노력 가운데서 우리를 격려하는 후원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늘 즐겁고 평화로울 수 있다. 내세울 만한 성공담이 별로 없을 때조차 말이다.
요한, 베드로, 바울 그리고 모든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가지고 당시 세계를 ‘정복했던’ 그 엄청난 에너지는 바로 그 만남[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온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지고 자신이나 서로에게 굳이 확신시켜 줄 필요가 없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이 없기 때문이며, 자기들의 행동의 적실성에 대해서도 주저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로지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분을 칭송하고 그분께 감사하고 그분을 예배하는 일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고 보고 만졌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그들의 진정한 생명이요 그들의 진정한 관심사요 그들의 진정한 사랑이 되셨기 때문에, 삶은 곧 행동이 되었고 삶의 모든 것은 자신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성물에 대한 지속적인 감사의 표현이 되었다.-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