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생각에 이어서 예수님의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고 특권입니다. 예수님의 생각 속에 “생명”이 있었다면, 예수님의 마음에는 “긍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둠으로 대표되는 죽음을 이기고 세상에 생명을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살림(살길)”을 생각합니다. 죽음을 뛰어넘습니다. 세상에는 죽음의 세력들이 많습니다. 결국에는 죽음으로 끝나는 일들도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배제하고 생명을 선택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삽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된 생명을 사랑으로 이웃에게 전합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살아갑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 외로운 이웃들, 힘이 없는 이웃들의 친구가 되고 힘닿는 대로 돕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이웃들에게 되갚는 것입니다.
이번 주부터 예수님의 생각, 마음에 이어서 예수님의 손과 발에 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이 실제로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배우게 될 것입니다. 살리시는 예수님,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이 손과 발로 연결되고 마무리됩니다. 예수님의 생각에 ‘생명’이, 예수님의 마음에 ‘긍휼’이 있었다면, 손과 발에는 “샬롬(평화)”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나병 환자를 고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나병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죄로 여겼습니다. 접촉을 통해서 전염되기에 세상에서 격리되어 지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구약의 율법에 근거한 조치였습니다(레13-14장). 피부에 의심되는 질환이 생기면 곧바로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정함과 부정함을 분별하는 재판관이었습니다.
나병처럼 심각한 피부질환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제사장에 오면, 7일 동안 격리해서 질병의 진행 상황을 살폈습니다. 7일 후에도 그대로이면 7일을 더 격리했고, 그때도 문제가 없으면 정하다고 판정하고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14일의 격리와 진찰에서 나병으로 판정되면 부정함이 확정되고 격리해서 살아야 했습니다. 부정한 나병환자와 접촉하는 사람도 부정하게 취급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사람들은 “부정하다”고 외치면서 나병환자를 외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환부를 손으로 만지시면서 그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부정한 나병 환자, 부정한 그의 질환을 만지시는 예수님의 손은 치료와 회복의 손입니다. 죄와 저주에 살던 나병 환자에게 그리스도의 샬롬이 임했습니다.-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