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의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배타적’인 모습 때문이랍니다.
예수님은 절대 배타적이지 않으셨는데,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가 배타적이 된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마태복음이 하나님 나라가 아닌
“천국(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십계명을
애지중지 지키는 유대인들을 위한 ‘배려’라고 했습니다.
저에게 배타적인 것의 반대말을 꼽으라면
“배려”를 선택하겠습니다.
예수님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가 맞지만,
자칫 구원의 문을 닫아버리는 배타적인 신앙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한 끗 차이 같습니다.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필요하지만,
다른 종교나 다른 신들을 악마화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중동 분쟁이 유일신 하나님/알라를 믿는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 간의 싸움인 것이 좋은 예입니다.
각자 믿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삼위일체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교리입니다.
그런데 삼위 하나님이 서로 소통하십니다.
서로 손을 잡고 춤추시는 ‘페리 코레시스’의 하나님이십니다.
매우 색다른 유일신 신앙입니다.
2.
엊그제 성경 통독에서 읽은
레위기 마지막 27장에는
하나님께 서원하는 규정이 나옵니다.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하였다면,
율법이 정한 값을 제단에 바치라는 것입니다.
한창 활동할 연령인 20-60세 남성은 은 오십 세겔,
같은 연령대의 여성은 30세겔,
5-20세의 남성과 여성은 각각 20세겔과 10세겔,
1개월에서 다섯 살까지 남자와 여자아이는
각각 은 다섯 세겔과 삼 세겔입니다.
요즘 은 값이 많이 올랐는데,
최근 은 값으로 환산하니 남성 은 오십세겔은 약 1,500불입니다.
예수님은 성인 여성의 서원값인 은 삼십 세겔에 팔리셨지요.
은 삽십 세겔은 노예 한 명에 해당하는 값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가난한 백성들에 대한 규정이 나옵니다.
정해진 서원값을 지불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 나올 수 없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기도 힘이 버겁습니다.
율법은 가난한 백성들을 무시하거나 배제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서원값을 지불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제사장을 찾아가고, 제사장은 “서원자의 형편대로” 값을 정해줍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라는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신약 성경은 물론
구약 성경에도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
공동체 속에서의 배려가 차고 넘치게 등장합니다.
그렇습니다.
크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배려’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의 시작이랍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4:5)
하나님,
넉넉한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2 12 이-메일 목회 서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