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모리아 산의 사건을,
아브라함의 입장과 이삭의 입장에서
두 주에 걸쳐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상식과 윤리, 도덕을 존중하시는 하나님도
발견하기 힘든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부조리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두말없이 순종했습니다.
지난주에는
노년의 아브라함이 하나님 명령을 따르기 위해,
10대에 접어든 아들 이삭의 협조가
꼭 필요했음을 나눴습니다.
이삭에게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신
예수님의 모습도 발견했습니다.
2.
아브라함과 이삭에 관한 설교를 마친 후,
제 마음에 계속 머무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실 때,
그리고 칼을 들고 이삭을 죽이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이 대답한 한 마디 히브리어 <힌내니>였습니다.
히브리어 <힌내니>는
“보시옵소서. 내가 여기있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습니다” 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모세, 사무엘, 이사야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에 <힌내니>라고 대답했습니다.
3.
<힌내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Here I am)”는
하나님 백성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언어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나’라는 자아도 내려놓았습니다.
어떤 주장이나 생각, 제안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무장해제하고
드리는 고백이 바로 <힌네니>입니다.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힌내니>의 정신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 뜻에 맡기셨습니다.
우리도 <힌내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가길 원합니다.
내 생각이나 세상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고난 주간,
아니 오늘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Here I am, Lord)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4 2 이-메일 목회 서신)
